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본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수천수만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정답이고 오답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수양을 통한 깨달음으로 자신을 위한 삶이나 세상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과 기준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삶이 세인들은 훌륭한 삶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과의 조화를 이루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술수도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기에 탓할 수도 없다. 자신의 현실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된다면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조정래의 단편소설 '어느 솔거의 죽음'의 이야기다. 어느 성안의 성주는 매우 포악하여 자신의 명을 어기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신의 은덕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성벽에 내걸기 위하여 화가를 섭외 하였고 이 화가는 성주의 모습을 사진과 같이 똑 같이 그려낸다. 하지만 흉악한 모습의 성주는 자신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게 그렸다는 이유로 이 화가를 옥에 가두게 된다. 이어서 다른 화가가 그림을 그리러 왔는데 이 화가는 성주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온화한 미소의 모습으로 성주의 마음에 쏙 들게 그려낸다. 이 이야기에서 진솔하게 그려낸 그림을 신하들의 비겁함과 왜곡된 가치관을 통하여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덕이 높은 성주임을 과시하는 모습에서 끝까지 자신의 진솔된 그림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화가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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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인형의 모습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정래의 또 다른 단편 '인형극'의 이야기다. 검사의 아들인 낙준이는 부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사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면접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자신을 대신해 줄수 있는 또래 아이 영찬이를 사립학교 입학지원생으로 둔갑시킨다. 결국 영찬이의 번호가 제비 뽑기에 당첨이 되고 낙준이는 입학하게 된다. 그 대가로 돈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순진무구한 모습에서 인간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타인의 모습을 하고 타인의 삶을 위한 연극을 해야 하는 현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자본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영찬이나 그 부모가 인생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하면서 포목점을 하는 박상섭이라는 인간은 일제시대의 지식인이다. 하지만 일본 유학 중에 공부는 안 하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감옥생활을 통하여 미래를 알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일제강점기가 끝났지만 일제강점기 민족의 반역자의 삶을 살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감옥에 투옥된다. 해방이 되고 난 뒤 정신을 차릴 세 도 없이 6.25 전쟁이 발발하고 주인공은 학도병이 되어 전쟁터에 나갔지만 지금 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폐망을 보면서도 자신의 포목점을 빼앗길 까봐 일본을 걱정하고 해방된 후에도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는 상황에서도 가족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박상섭의 부모와 주인공 박상섭의 정의로운 행동 사이에서 인간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세상을 등지는 행위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전쟁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무엇이 진리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인간본성을 탓할 수는 없지만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 속에 비 인간적인 측면이 숨어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야 한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만 모두가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늘도 살아낸 나의 하루가 인간적이든 비인간적이든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러한 삶이 정답인지 오답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으로 남기고 사고의 확장을 통한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조금씩 변해보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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