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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라입
길다면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언제쯤 환한 빛을 마주하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듯 걸어간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숨을 고를 때면, 이 기나긴 고난의 시간이 언제 끝날까 하는 조급함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내 안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단단한 감각을 느끼곤 한디. 바로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자신감이다.언제부터인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운들이 일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습관처럼 읽고 외우며, 자기계발을 한답시고 끄적였던 수많은 문장들과 다짐들이 문득문득 머릿속을 스치기도한다. 한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던 그 글귀들이 이제는 실체가 되어, 내가 꿈꾸는 이상(理想)이 곧 현실이 될 것..
인생의 가장 가파른 고비를 묵묵히 기어올라 마침내 능선 끝에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진정한 시련은 산을 오르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상 너머에 펼쳐질 미지의 풍경을 감당해 내는 두려움이라는 것이다.지금 내 앞에는 어쩌면 오랜 어둠을 끝내고 삶의 결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지도 모를 거대한 문이 하나 살짝 열리려한다. 그것은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전환점의 계기이자, 오랫동안 말라붙어 있던 열정에 다시금 서늘한 생기를 불어넣는 기회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차가운 이성이 손사래를 치고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쓰디쓴 실패의 기억들이, 혹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조급한 기대를 억누르며 단단한 빗장..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세상이 각박해졌어도 결국 남는 것은 정(情)과 인간미라고. 개뿔서로 돕고 온기를 나누며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본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매일같이 부딪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는 그 따뜻한 말들이 얼마나 무력한지 쉽게 목격하게 된다.당장 내일의 생계가 흔들리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인간미라는 가치는 가장 먼저 순위에서 밀려난다.사무실이나 사업 현장, 혹은 예산안을 두고 벌어지는 회의실을 둘러보면 그 진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감정에 치우쳐 사정을 봐주거나 인간적인 도리를 앞세우다가는 결국 공멸하기 십상이다."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일했는데…"라며 온정을 베풀기엔, 기업이 짊어진 부채와 지켜야 할 다수의 생계가 너무나 무겁다. 냉정한 계산과 철저한 손익계산만이 ..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감당하기 버거운 극한의 단애 끝에 몰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그 지점에서,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치는 감정은 지독한 억울함이다. '왜 하필 나인가',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외부의 거대한 부조리와 타인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항변하고 싶어 목구멍까지 뜨거운 말이 치솟는다.억울함을 토해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분노와 한숨으로 시간을 채워보지만, 분노가 걷힌 자리에는 서늘한 진실만이 남는다. 부정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절벽 끝까지 걸어오는 동안 수많은 갈래 길에서 방향을 틀고 결정을 내린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손에 이끌려 온 듯해도, 그 판에 동의하거나 머물러..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온 몸으로 거부하고 싶은 순간과 마주하곤 힌다. 의사의 차가운 진단명,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의 파국, 혹은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순간 등 명백한 객관적 사실임에도 우리의 내면은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린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이처럼 부정할 수 없음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끝내 이를 거부하는 현상은 나약함의 소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진화시켜 온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가깝다.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방어기제부정(Denial)은 현실의 너무 가파른 비탈길에서 우리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일종의 안전바다.인간의 정신은 한꺼번에 감당하기 벅찬 고통을 마주하면 일시적으로 감각의 회로를 차단한다. 만약 진실을 단 1초 만에..
오늘 품은 희망이 내일의 고문으로 돌변할 때, 우리는 삶의 가장 깊은 허탈감과 마주하게 된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온갖 시련을 버텨내게 만드는 아름다운 주문이지만, 냉혹한 현실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거대한 과장과 포장으로 치장되어 우리를 더 깊은 실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도 한다.오늘 얻은 희망이 헛된 고문이 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실천적 지혜를 길러야 한다첫째 결과가 아닌 ‘과정의 실체’를 점검해야 한다과장이 섞인 희망은 대개 비현실적인 청사진이나 타인이 그려준 장밋빛 미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둘째 구체성의 함정 피해야한다희망을 품을 때 그 과정이 얼마나 현실적인 발판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막연한 기대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과정은 오래가지 못하기때문이다..
시련은 예고도 없이, 마치 견고한 제방을 무너뜨리려는 거친 물살처럼 한꺼번에 몰려오곤 ㅎ한다. 사방이 벽으로 가막힌 듯 숨이 턱 막히는 그 순간에도, 아이러니하게 인간의 마음은 아주 작은 실오라기 같은 가능성이라도 붙잡으려 기웃거리게 된다."이 난국 속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손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그것은 비겁함도, 이기심도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겨내고 싶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자,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재난의 둑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듯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풍경 속에서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피는 일은 처절하면서도 슬프도록 현실적이다.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으나, 흔들리지 않는 중심 하나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시련..
익숙한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희망을 품는다. 가보지 않은 길, 만나지 못한 사람들, 낯선 풍경이 주는 설렘은 일상에 지친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고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하지만 그 새로운 곳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없다면, 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간 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연 그 낯선 환경을 온전히 '새로움'이라는 설렘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장소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것이 삶의 진정한 도약이나 전환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는 공간의 이동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는 흔히 '새로움'이라면 무조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