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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라입
우리는 누구나 삶의 뒤편에 거대한 후회의 목록을 품고 살아간다. "그때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조금 더 참았더라면," 혹은 "왜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불쑥불쑥 찾아와 현재의 발목을 잡곤 한다.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는 어쩌면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 열망의 반대급부이자, 지난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후회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깊은 회한 속에서 아무런 행동도 건져 올리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아무리 깊은 후회라 할지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단지 마음을 소모하는 헛된 메아리에 불과하다.지나간 시간은 이미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음에도, 눈..
"알고 있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우리는 흔히 머리로 이해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상황의 객관적인 지표를 보고, 현실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분석하고,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성적인 영역이다 이 단계까지 오기에도 당신은 이미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진짜 싸움은 그다음부터 시작이다.머리는 결승선에 도착해 소리치고 있는데, 심장은 여전히 출발선에 묶여 있다. "이제 그만해야 해", "더 이상 붙잡아봤자 소용없어"라고 이성이 채찍질을 해도, 몸과 감정은 그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채 굳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 잊었다가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고,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온..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연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히 한 일도 없고, 어딘가 멀리 다녀온 것도 아니다. 달력의 숫자만 덩그러니 지나가 버린 자리에는, 유난히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거나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보냈던 시간의 흔적만 멍하니 남아 있다.‘아, 이번 연휴도 이렇게 무의미하게 흘려보냈구나.’순간 밀려오는 가벼운 자책과 허전함.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는다. 꼭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겨야만 알찬 하루인 걸까. 어쩌면 우리는 늘 긴장 속에 살아가느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멈춤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컴퓨터도 과부하가 걸리면 잠시 전원을 끄고 재부팅을 하듯 인간의 마음에도 반..
때로는 인생의 무게를 줄여야 비로소 가볍게 앞으로 나아갈 수있다지갑이 가벼워질 때보다, 마음의 곳간에 쌓여 있던 자부심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가 있다. 인생의 한 시기를 치열하게 관통하며 얻어냈던 성공의 징표들. 전 직장에서 치열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품에 안았던 상패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한때는 나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고, 밤을 새워 일한 대가였으며, 자긍심의 원천이었던 물건들이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은 찬란했던 시절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려는 나를 옥죄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상패를 쓰레기봉투에 담기 위해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묘한 허탈감이었다. '내가 이 작은 유리 조각과 금속 덩어리를 얻으려 그토록 아등바등 살았던가' 하는 회의감이 파..
추석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고향과 가족, 보름달, 송편 그리고 오랜만에 마주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다.어릴 때의 추석은 그저 기다려지는 날이었다.맛있는 음식이 많았고,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주머니에 용돈이 생기는 날이었다.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추석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보름달을 바라보며 생각한다.달은 언제나 둥근 모습으로 떠 있는 것이 아니다.초승달에서 시작해 반달이 되고, 다시 보름달이 된 뒤에는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는다.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젊은 시절에는 무엇이든 채우려고 한다.돈도 더 벌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놓치고 싶지 않다.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삶은 무언가를 계속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기도 하..
어느 회사 조직도 맨 윗자리에 대표이사보다도 높은 곳에 덩그러니 놓인 일원짜리 동전 하나. 그 기발하고도 묵직한 풍경은 우리에게 성공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깊은 화두를 던지게 한다."대표보다 일 원이라도 많으면, 네가 바로 회장이다."이 위트 있는 일침은 단순히 자본의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주체성에 대한 날카로운 은유다.우리는 흔히 사회가 정해놓은 직함과 계급이라는 조직도 속에서 살아간다. 부장, 이사, 대표라는 타이틀이 곧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처럼 착각한다 남들이 정해놓은 권력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누가 앉아 있든,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는 결국 '내가 가진 단 일 원의 무게'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조직의 최고경영자라 할지라도 삶..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 할 수 없음에도, 나처럼 혹은 지나간 성현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주절거리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잘못된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된다면 그만이다. 애초에 절대적인 올바름이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떠들면서도 자신이 정작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잘못에 대하여 참회의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과,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지 말기를 바라는 전도 활동을 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올바른 행동인지 과연 판단할 수 있을까? 불교 용어로 ‘이참사참(理懺事懺)’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의 참모습과 이치를 깨달아 죄의 뿌리 자체를 끊어내게 만드는 수행이 중요한 것인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드러내고..
성선설이네 성악설이네를 운운하는 것도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므로 방치하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는 이유로 법을 만들고 예의 규범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악설 논자들의 진실,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달려가서 구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성선설 논자들의 진실 중에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듯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노리며 자신의 논리가 맞음을 끼워 넣으려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이든 성선설이든 상관이 없다. 지금 현재 느끼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생각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면 된다. 단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할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