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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자

용용아리 2024. 2. 2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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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과 나와의 상충된 의견이나 요구사항 또는 서로가 이익을 가진 사람들 간에 상호적인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나 결과를 말한다. 그래서 타협은 상호 간의 의사소통과 협력을 통해 각자 서로 다른 이해와 목표를 조율하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점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간의 상충된 의견을 조율한다고 했을 때 그 의견 속에는 잠재적인 자기의 이익이 수반되어 있을 수 있다. 설사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는 성취감은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타협한다고 하여 내가 주도권을 잡고 가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타협이라 할 수 없고 그저 통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조금 내어 준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예상치 못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이다. 세상이 힘들다고 세상과의 타협을 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좋으련만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를 다잡아 놓고 있어야 상대방과의 타협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과 학습과 배움을 계속하여야 하는 것이다.
타협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업가라면 비즈니스 협상테이블을 마련할 것이고 상대방 또한 비즈니스 관련자이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양측이 원하는 조건으로 찾으면 될 것이고 개인 간의 의견 충돌이나 가족 간의 의사 결정에서도 원만한 타협점을 찾으면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고지식한 자기만의 주장이 아니라 소통과 경청의 자세를 통한 백 퍼센트 만족이 아니더라도 그런 효과가 발생한다고 했을 때 자기 것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 자세가 필요할 수 있다.
진정한 타협은 의사소통과 경청을 통해 상대방의 요구와 욕구를 파악하고, 상호간의 이익을 고려하여 서로 양보하고 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융통성과 협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타협한 결과로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고 갈등을 해소하면서 상호 간의 신뢰와 협업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관계라는 것이 한번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훨씬 쉽게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협이라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양측의 목표와 이익이 상반되어 타협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대안을 모색하거나 외부의 중재자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한 번이 아니면 여러 번의 시도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인내심을 발휘할 경우가 생길 수 있음을 감안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타협은 서로 다른 의견과 이익을 조율하여 상호간의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나 결과 속에서 의사소통과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목표라는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타협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타협은 없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버티고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가 타협점을 찾아가야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의 이익과 목표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때론 포용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여야 한다.
세상과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고 서로 다른 이해와 관점을 조율하고,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정보와 지식의 습득을 통한 자료를 활용하고 소통과 대화를 위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협업을 통하여 상호이익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타협점은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다. 타인의 의견과 피드백에 대한 수렴의지와 자기인식을 통한 감정 관리가 타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바란다.
지금의 나도 세상과의 타협을 하고 싶다. 고난의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를 묻고 싶지만 거기에 대한 답도 내가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해결하고 타협 해야할 논제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상에 살아있다는 뜻이리라. 지금의 모습이 바다에 빠져 발버둥이 아닌 호수 위 백조의 발놀림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혼자만의 힘으로 상황을 헤쳐나와야 함도 안다. 하지만 나와의 타협을 시도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도 나에 대한 자조적인 해탈도 다 소용이 없다. 밀려오는 불안감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족쇄는 나를 더욱 옥죄고 있다. 내가 세상을 이해해야 하나, 세상이 나를 이해해야 하나,의 기로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허공의 외침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외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원망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먼저이고 두드림으로 자각하는 것보다 대안을 향한 몸부림이 먼저일 것이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라고 하였다. 지금이 궁한 시기다. 그래서 변해야 하고 변한다면 통할것이고 통한다면 구할 수 있다는 자위로 세상과의 타협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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