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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

용용아리 2024. 4. 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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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의미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감동과 혼란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극복하는데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정신없이 지나온 세월이라고 중년의 나이에 와서 말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로 무슨 정신으로, 무슨 목표로 살아왔는지 모르게 지나왔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이 이제는 보상을 바라는 나이에 이르렀다고 느낄 때쯤 또다시 찾아온 공허함을 맞이하고 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앞으로의 생활도 자신 있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부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전문용어로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발효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젊어서의 실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지금 중년의 나이 에는 실패는 바로 실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신중하고 조심하고 도전에 망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기 위하여 책을 읽기도 하고, 강연을 듣기도 하며 스스로에 대한 기합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다.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멈출 수도 있지만 '아직은'이라는 단어가 나를 충동질하고 있다.

담하용이

 인간의 습성중에 하나가 해야 할 일은 하기 싫어하고 해서는 안될 일은 하고 싶어 한다. 교과서처럼 우리 주변에서 많은 경험담과 이야기를  설파하는 매체들이 우리 주변에 상주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힘들어도 쭉 해야 할 것들 중에 독서와 공부, 자기 스펙을 쌓는 행위, 건강을 위한 운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뢰를 얻기 위한 행동 등은 아무리 힘들어도, 나이가 들어도 해야 할 일들인 것이다. 공부하기 싫고 책을 읽는 것은 더 싫다. 운동하는 것보다 집에서 잠자는 것이 좋고 남들 보다는 내가 중요하니 나만 잘 나가면 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존재하지 못했다. 절제와 인내가 있었기에 이성을 지키면서 공중도덕을 유지하면서 살았다. 각자가 그렇게 지켜낸 세상이 오늘인 것이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담하용이(談何容易)' 라고 하였다. 말로만 떠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해보면 쉽지 않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는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의 괴리에서 오는 비애를 경험하지 않은 인간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당하면서도 또다시 당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이제는 세상을 살만큼 살았으니 말보다는 실제에 집중하는 실존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 아직도 이론과 이설에 흔들리는 삶은 안된다. 하여 나만의 나침판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기운이 미치는 북남 쪽으로 가야 한다. 모두가 남동쪽을 가리킬 때 나의 나침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뿐히 걸어갈 수 있는 근육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함에 반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다른 이의 진로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로 인하여 하염없이 원망했던 오늘 이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고 조용히 눈감고 상대방의 입장을 되새겨 보면 어느 센가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나의 감정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이 단지 숨을 쉬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라면 나는 오늘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재잘거렸던 지난날 조직생활이 그립기도 하지만 진정성의 농도가 깊어질수록 재잘거림이 없어진 것은 과거의 껍데기를 벗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줄탁동시

 지금껏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베풀고 희생함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으로 부모님을 위한 나의 희생을 미덕으로 살았고, 부모로서의 의무감으로 자식을 보살피는 것을 참 삶이라 여기면서 살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 안에 나는 없었던 것이다.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느끼게 되는 공허함을 보상 받으려는 몸짓은 하지 않으련다. 하지만 남은 삶은 나를 위하여 희생하고 싶다는 욕망은 있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자식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부모로서의 삶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라고 술기운을 빌려 말하는 자식을 보면서 이 순간을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내가 이뤄낸 인생의 결과물이라는 자부심을 느껴본다. 부모로서의 인생은 '이만하면 되었다'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말하는 자식의 삶도 나처럼 부모를 위한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단지 나만의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목표와 가치관을 정립하고 열정을 불어넣어야 할 때이다. 목표와 가치를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계획도를 작성해야 한다. 그동안의 관계를 개선하고 나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여 울타리를 조성하고 그 안에서 신선한 목초를 키울 수 있도록 동업자도 구해야 한다. 나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배양해야 한다. 산다는 것이 뭐 별개 있으랴 생각했던 지난날을 질책하며 하루의 의미를 깊게 새기고 한 달은 만들며 일 년을 키워가야 한다. 관계의 연속성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움을 형성한다는 것에 명확한 구분을 하지 못하지만 의식적인 호흡을 통하여 냉철함을 가미한 약간은 이기적이라도 흔들림은 없어야 한다. 밟을수록 더 강해지는 잡초의 삶보다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챙길 수 있으면 챙기는 계산적인 삶이 아직은 낯설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는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삶에서 얻는 눈치를 한껏 발휘하고 달려드는 현실의 이리 때를 울타리 안쪽에서 맞이하는 안전함을 구비해 두자.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현실과 결부시켜 불협화음을 생성하지 말고 줄탁동시의 기회를 잡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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