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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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절망하지는 말자

용용아리 2024. 5. 2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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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앞날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 미래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만을 믿고 힘들지만 희망을 갖고 오늘도 도전의 발자국을 남기고는 있다. 하지만 불현듯 미래가 있기는 있는 걸까? 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지치고 힘들다고 하소연해 보지만 과연 죽을힘을 다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았는지에 대한 자성의 물음도 해본다. 하여튼 이러한 물음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지금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화려함 속에 공허한 미래의 모습

우리의 뇌는 쉼이 없어야 한다

 공동사회를 이루고 사는 우리는 말로는 상호협동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의 신리를 챙기기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들어난 표정과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진실과의 괴리 속에서 눈치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천억 개의 뉴런과 시냅스를 굴리면서도 그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하려는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하고 공동의 성장을 위한다면 내 것의 일부를 내어주어야 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대방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서도 내 것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도량의 골을 넓힐 용기는 없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핑계로 회피하려 하고 있다.

 현실이 중요함을 알고 있다. 지금을 극복하지 못함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여지를 남기는 미덕을 발휘해 보자는 것이다. 너무나 타이트한 삶이라 하더라도 완벽하지 않기에 틈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은 틈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는 것이 세상의 진리라지만 그 하나가 온전한 하나인지, 그 온전함이 상대방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입장이 되는지에 대한 보살핌이 선행 되어야 한다. 버려야할 짐은 버려야 하지만, 인연이라는 봇짐 속에 버리지 못한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버리지 못한 봇짐이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니면 쓸데는 없지만 그 봇짐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행동의 결정을 하게 된다, 

 지금 당장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한 숟가락의 흰 죽이지만 세상은 팥이 들어간 팥죽을 원한다. 하지만 원한다고 하여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흰 죽이든 팥죽이든 원하는 것이 죽이라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어야 한다. 세상이 힘들다고 말들 하지만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알아야 하지만 무엇이 문제고, 왜 문제인지에 대하여 살피려 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이 진정 힘든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이 느끼는 힘듦 하고, 당신이 느끼는 힘듦은 차원이 다르다. 안락의자의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어서 당신이 앉아있는 의자가 안락의자인지 가시방석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알려주고 싶지만 알려하지 않음이 문제고,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음이 문제다. 

 앞으로 닦칠 우리의 과제는 성공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의 것을 해결 하느라 장기적인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하여는 항상 다음에 라는 순서를 정하고 만다. 내일의 문제는 내일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일의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이 보인다면 사전에 대비하여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중요하고 내일의 문제는 내일이라고 치부하고 마는 인생을 수십 년간 살아왔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핑계로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여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보이는 성과를 만들고 싶지만 가식이라는 허울이 앞을 가려버린다. 마음속에서의 성장이 상대방을 훈계하고 있지만 그저 술 한잔 먹고 떠드는 넋두리로 치부하고 만다. 진실된 언어는 뇌를 통하지 않고 나온다. 검증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사고의 늪을 거치고 나온 당신의 넋두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식이 들러 붙어버린다. 진실을 왜곡한다고 하지만 내뱉는 과정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라고 하여 절망을 하지 말고 굳건히 버티라고 하지만, 현실의 장막은 너무나 두껍다.  보이는 것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과 희망이 보이는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앞을 알 수 없었기에 여기까지 왔고, 앞을 알 수 없기에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계속 정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 모를 미래를 위하여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지속적으로 당겨야 한다. 스스로는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잣대를 갖고 있다. 완벽한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있지만 사향이 바뀌면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어제의 그 길이지만 나도 모르게 새로운 길이 생겼다는 사실을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시키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당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세상이 당신을 배신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우는 핏기만 가시면 먹어야 한다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계획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음도 있지만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당치 않는 예견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나침반을 잘 간직하라고 훈계를 하고 있다. 최선을 다했다고 토로 하지만 당신만 인정하는 수고다. 모두가 인정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수고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는 숨기려 하지만 상대방의 눈에는 크게만 보이는 수고를 하자. 가식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수고가 당신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라고 하지만 당신이 불을 켜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한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다면 지자체에 신고하면 되지만 희미한 가로등 불빛 때문에 내 인생의 불빛도 희미해졌다고 탄식해 봤자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는 숯불처럼 은은한 끈기를 지펴보자. 투플러스 한우의 진정한 맛을 우려낼 수 있는 은근한 숯불의 삶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이다. 꺼질듯 약해 보이지만 입김 한 번으로 되살아나는 열기를 오래도록 간직해 보자. 타지 않는 열정으로 뒤집는 수고를 아까워하지 않는 당신의 집게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정글도이다. 우리는 단지 이 정글도를 힘차게 휘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달콤한 사탕수수를 당신의 창고에 쟁여보는 오늘이 되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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