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계속적인 자극을 주입하는 방법은? 본문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희망의 의지를 불태우기 위한 행동들을 시도한다.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함에는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동안 나태해진 의지를 시기와 장소에 의해서라도 다시금 불러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게 의식적인 행위를 한다고 하여 지속성이 없다면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새해 새 희망을 꿈꾸었지만 지금 우리는 후회를 하고 있다. '작심삼일'이라는 단어가 틀림이 없음을 우리는 증명해 보이면서 여기 가지 온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음은 의지의 박약이다. 의지의 박약을 벗어나기 위하여는 기속적인 자극을 주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우리는 또다시 어제 바랐던 것을 오늘 다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희망에 대한 목표를 거창하게 세우고 실천 계획을 수립하였다.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동기부여를 주기 위하여 노력 아닌 노력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공허한 메아리마저 사그라들려는 시점에 예전 모습 그대로 서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항상 제자리인듯한 나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의 도전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지속적인 자극을 주입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때이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는 자기 성찰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실천계획과 흐트러지지 않는 자극을 주입할 수 있는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삶은 그 자체가 피곤하다.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쉬어야 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억지로 걸어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쉼을 통한 에너지의 충전인 것이다. 지친몸을 이끌고 멈추지 않는 것이 진리라 여기고 방향도 모른 체 걸어가기만 한다고 하여 출구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는 자기 계발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수행해야 하는 교본과도 같은 것이다. 멈춰야 보이고 쉬어야 의지가 힘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여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하여도 점검이 필요하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격언이 정답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의 환경과 내면의 잠재능력이 나아가야할 목표를 정해주었지만 수정하거나 재설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목표를 다시금 점검해 보고 신고 있는 신발의 안정감과 지고 있는 짐과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무게 중심은 꼭 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중요한 포인트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자꾸만 이탈하게 만든다. 욕심을 부린 등짐은 결국 내려놓아야 하는 걸림돌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무게와 시간을 찾아서 작은 성취지만 이루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은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실천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명언이고 자기 계발의 덕목인 것이다.
의지는 욕심의 발로이다. 하지만 욕심은 의지를 동반해야 하지만 욕심을 그마저도 독차지 하려한다. 의지가 꺾이지 않게 거름을 주어야 한다. 자기 암시를 통하여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고 '지금 까지 잘 해왔어'와 같은 격려의 거름이 의지를 다시 일어서게 할 것이다. 세상의 가장 바른 이치는 인내와 끈기를 동반한 지속성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지치지 않는 것이고 속도와 무게와 방향을 점검하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이기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완주를 위하여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순위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너무나 일찍 정상에 오른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수십 수백 배의 노력을 하고 있다. 늦은 것이 아니라 가고 있는 중이다. 올라갈 곳이 있기에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정상에 선 사람은 이제 내려올 일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올라오기를 응원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담과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면서 자기 계발이라는 지팡이를 보조 삼아 멈추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앞서가는 사람을 부러워만 하지말고 옆에서 걷는 사람에 세 도움을 요청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나누어 마실 수 있는 물 한 모금과 격려의 한마디에 우리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 올랐던 작은 동산의 정상에서 느꼈던 감흥을 곧 재현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우리 뇌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아들 녀석이 독서하는 아빠를 보고 쿠폰을 이용하여 여덟 권의 책을 구입해 주었다. 책상에 읽은 책들로만 꽂혀있다가 갑자기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니 너무 욕심을 부렸나 잠깐 생각을 했다. 인문학 위주로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1100페이지가 넘는 '국부론'에서 950페이지의 '한비자'를 비롯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비투스' '생각의 연금술' 유발하라리의 '넥서스' '고전이 답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
물론 욕심이다. 내가 읽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읽을 수 있다. 다만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기회가 왔을때 잡아야 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가르침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벌써 소설은 가볍게 읽어냈지 않은가? 당분간 다음에 읽을 책에 대하여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책들 속에서 또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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