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편향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본문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인간 스스로가 만들었던 규정이나 법에 대하여 우리는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사회의 안녕을 기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이나 법이지만 상황에 따라 판단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는 있다. 교통신호를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새벽 3시에 텅 빈 도로에서 신호를 지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편향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물론 누가 본다고 하여 지키고 안 본다고 하여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당연함에도 유연함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사고의 발단은 현재의 상황에서 시작되지만 판단의 잣대는 과거에 주입된 사고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입되어버린 획일화된 사고가 더 이상 확장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편향적인 사고의 틀을 깨기 위한 많은 경험과 자기 성찰의 시간을 자기 계발의 과정에 할애를 해야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입식으로 받아들인 지식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고를 가두어 버렸지만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음은 자신의 잘못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있지만 그 선택의 기준이 되는 사고가 과거에 유입된 그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새롭고 창조적이고 특별한 사고의 확장을 시도해야 한다.
저마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의 방향을 잡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공의 기본에 경제적인 자유를 획득하고자 돈을 쫓고 있는 이도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것이지만 이미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나 성현들은 이에 대하여 너무나 추상적인 대답만 내놓고 있다. 돈을 좇지 마라. 돈이 들어오게 만들어라. 돈을 벌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해라. 등등 우리의 사고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현실을 무시하고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로 세상의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은 이미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사람들 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버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다만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과 가르침으로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맞는 사고와 판단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하여 알고 그에 맞는 자기 계발의 노력으로 사고의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부자가 될 수 있고 거지가 될 수 있다. 극단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그만큼 판단과 선택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 선택의 기준이 사고의 확장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탁월한 선택으로 위기를 묘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선택으로 위기를 모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직장생활이라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월급이라는 것을 경제적 자유를 이뤄줄 수 있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좀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하여 승진을 하기 위한 광대의 분장만 하고 살아왔다. 사고의 확장을 펼치지 못한 것이다. 아니 만족하고 있었고 이것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돈은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한 보상의 결과물이다. 물건을 만들어서 이윤을 남긴다거나 음식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의 대가를 보상받는다거나의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했을때 발생하는 보상에 대한 결과만을 돈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순간의 선택을 쉽게 해 버리는 것이다. a를 선택했을 경우와 b를 선택했을 경우 그리고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하여 순간적으로 우리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에 주입된 편향된 사고에 의존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규칙과 법은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하고 철길건널목 앞에서는 일단정지를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준수하고 있다. 규정 속도를 준수해야 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운전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고 준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는 중인지, 저 앞에서 과속으로 나에게 돌진하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인지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앞에 발생하는 여러 상황은 항상 나 혼자만의 행동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피하기 위하여 내가 낭떠러지로 떨어져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밀어붙여서 상대방차를 치어야 할지는 순간적으로 본능이 작용을 하겠지만 순간적인 자신의 인지능력도 발휘된다. 어떤 것이 더 나은 것 인지는 논란의 소제 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사고가 작동할 수 있도록 확장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로 인하여 감내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는 경제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철길건널목을 지나가는 트럭이 있다. 아슬아슬하게 철길을 통과하려는 순간 차단기가 내려가 버리고 트럭은 철길위에 멈춰서 있다. 기차가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가면 지나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급하게 운전사는 내려서 저 멀리서 오는 기차를 향해 멈추라고 소리치며 손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기차는 철길에 걸쳐진 트럭을 들이박고 이내 탈선을 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왜 운전사는 철길에 걸쳐서 멈추었을까? 차단기를 뚫고라도 건널목을 지나가지 않았을까? 운전사의 머릿속에는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기존에 주입된 관념이 있었다. 차단기를 훼손하게 되면 자기가 변상을 해야 하고 벌금도 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편향된 사고가 확장을 하지 못하고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차단기 훼손한것과 벌금을 낸다 하더라도 적은 비용만 치르면 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수십억 원의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비용이 발생한다면 적은 비용이 발생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그런 순간적인 상황에서 확장된 사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황스러운 순간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본능과 그 속에 섞여 나오는 자신만의 인지성향이 바로 사고의 확장이다. 이러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러한 질문을 해야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무슨 행동을 했는가?
내가 계획한 것을 얼나마 실행 했는가?
오늘 만난 니체가 말한 나 자신에 대한 정의는 세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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