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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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라이프의 희망여행

갑,을,병,정,

용용아리 2024. 4. 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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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잘해야 세상을 살아가는데 쉬운 길을 걸을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 으로서 합리적 이익이 수반되지 않으면 관계성 이라는 풍선은 한낯 바람 빠진 고무 천조각일수 밖에없다. 많은 관계속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할 것이 신뢰 라고 생각된다. 서로의 이익을 담보하기 위하여 맺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하여는 신뢰를 바탕으로한 이익창출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하여 마음과 언어로는 당연함을 인정하지만 몇번의 신뢰파괴 경험을 통하여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하여 만들어진것이 법이고 계약서 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하여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살아가고있다. 하지만 이익이 발생하지 않은 무의미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발버둥의 몸짓을 계속하기란 어렵다.

갑을정병

'계약의 시작은 갑과을을 정하는 것'


사업상 관계해야하는 많은 용역업체들이 서로의 신뢰를 인정하면서도 바라는 것이 계약서이며 공증이다, 법률적인 관계를 언급하는 그 자체를  싫어하지만 형식적이라도 작성되기를 바라는 것이 계약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류적인 절차를 수행하다보면 꼭 정해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갑'과 '을'이다. 세상의 힘듦을 토로하면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갑을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제일 싫어하면서도 제일 많이 쓰고 있는 단어가 갑을 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상대방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익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믿음을 주지않는 관계속에서 상호관계가 유기적으로 진행될리 만무하다. 계약과 갑을이라는 명제의 구분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을 탓할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라는 구성체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만든 규칙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한다면 매정이라는 단어를 쓰는것이 어쩌면 나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관계의 시작은 계약이다. 계약의 완결은 공증이고 법의 판결이다. 물론 이러한 단계까지 가지 않아야 하지만 만일 이라는 명제가 상호관계를 무너뜨리고 과거의 경험으로 인한 학습의 결과이다. 시작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갈수 있지만 과정과 결과가 계획된대로 진행되지 않을경우 시작단계에서 맺었던 관계의 약속이행은 보류될 수 밖에 없고 그로인한 도미노의 퍼즐은 하염없이 꼬리를 물게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비하기 위하여 계약이라는 문서를 작성하고 보험을 들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잘될것이라는 가정하에 시작한 관계가 부정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계획된 것이 아니기에 잠시 기다려 주길 바란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관계라는 것이 일대일의 문제가 아니라 유기적인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나로 시작한 불편한 관계는 알 수없는 관계에 까지 고리를 연결하고 있어서 그 실마리를 풀기란 쉽지않다.

'갑'은 계약에 있어서 우월적지위를 갖는다. 종속된 계약당사자에게 권한을 부릴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약을 유도할수 있는 위치에 있다. 상대방에게 이익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계약당사자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기도 한다.이에반해 '을'은 갑으로부터 오는 요구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기의 이익분을 조금 덜어내더라도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수용할수 밖에 없다. 물론 부당한 계약을 거부함으로써 자존감을 지키는 을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경우 을은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게 되는것이 일반적이다.  보통의 경우 계약은 두당사자가 갑과을의 위치에서 이루어지지만 이둘의 계약을 합리화 시켜주는 '병'이나 '정'이 포함되는 경우도있다. 갑을간 계약의 매개체 역활을 하지만 정과병에게는 주장할수 있는 권리가 거의없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본과 자원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을에게 가하는 칼질을 세상사람들은 '갑질'이라고 표현한다. 갑질을할 수 있는것은 단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본과 자원이 많이 있을때 가능하다. 지금은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이전에는 을이었다는 사실을 대개는 인식하지 못한다. 갑의지위가 대개는 높은 위치에 있지만그렇지 못하는경우도있다. 자본과 자원의 부족으로 인하여 을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계약도 있을수 있다. 그래서 계약을 하는것에 이의를 다는것이  아니라 갑과을 이라는 지위에 대하여 높낮이를 두지말자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갑과을의 위치가 바뀌어 법앞에설 수도 있음이다. 이러한 경우가 이세상에는 허다하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간에 계약의 종료에 따른 이익의 분배가 정당하지못함을 법으로 해결하려 할때면 갑과을의 위치는 바뀌게 된다.

'자신에게 갑질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지금 당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든 갑은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개인간의  계약이든 회사간의 계약이든 누구도 갑이 될수없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이유가 법적인 다툼에 대비하는 것일뿐 성실한 계약수행이 선행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고 싶지만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하여 발생되는 분란이 법조계를 먹여 살리고있다. 당신이 칼질한 도마위의 을이당신을 하수구로 밀어넣을 수도 있다. 관계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물질적 이익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가끔씩 터져나오는 재벌들의 갑질논란에 대하여 들어봤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이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칼질하는것이다. 그렇다고 계약서를 작성한것도 아니다.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은 깡패가 되는것이다. 우리도 갑의위치에 서고싶을때가 많다. 어쩌면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것도 그 이유일 수 있다. 갑질 이라는 표현은 비속어로 갑들을 탓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것이다. 인간은평등한 권리를 누릴수 있는존재이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지위를 갖지못한다. 갑과을은 인간스스로가 만든 지위다. 앞으로의 삶을 갑으로 살 것인지 을로 살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신과의 계약을 맺었다. 최선을 다한 삶속에서 의미있게 성장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성공적인 삶으로 베풂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로 계약을 한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방황을 하면서 계약서를 찢어버리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힘들고 괴로운 현실이지만 당신 가슴속 서랍에 간직하고 있는 계약서를 꺼내어 보기를 바란다. 갑과 을의 칼질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질책과 계약이행을 위한 다짐을 되새겨 보자. 자기관리를 통하여 신체를 온전히 보전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잠시 잊고 있던 계약의 이행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의 계약이 법적인 강제성을 띠지는 않지만 세상을 빛내는 촛불은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오늘과 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일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미래에게 오늘의 갑질을 해보자. 미루고 흐트러진 당신을 향해 책과 글로써 칼질을 해보는 것이다. 조금씩 변화하는 당신의 지위는 정과 병을 위한 무기로 쓰여져야 하기에 오늘 당하는 갑질의 분노가 따갑지만은 않을것이다. 자신에게 갑질하는 당신의 모습이 아름다운것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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