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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그렇게 살아라

용용아리 2023. 12. 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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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독자적인 사고와 방식으로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무리에 휩쓸려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따라다니는 것도 잘못된 삶이라고 생각된다. 세상 모든사람들이 행동한다고 하여 나도 무작정 따라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내일을 설계하는 것이 옳을까? 어느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나의 생각과주관이 그동안의 삶 속에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일순간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단이라거나 고집이라는것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하지만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 과정과정에서 순간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하는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유부단함을 탓하는 것은 자기의 고지식함에 대한 토로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고 슬기로울 수 있는 지혜를 길러보자. 어떻게든 살아지는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내뜻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

사흘동안의 연휴속에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사회의 무리로부터 소외를 받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대중의 무리속에 들어가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왠지모를 불안함을 조장하는 분위기를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연휴 마지막날 가까운 곳으로 야외활동을 나가게 된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 속에서 밀려다니는 자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나를 밀어 넣어봄으로써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했듯이 뿌듯한 감정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가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가식적인 행동으로 군중속에 서있는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지금껏 살면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뇌해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많은 질문을 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거게에 대한 답을 찾지못하고 오늘도 똑같은 질문만을 하면서 이 밤도 알코올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사유의 깊이를 메꾸고 현실적인것부터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 두드리고 있는 자판의 글씨가 오타만을 뱉어내고 있다.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앞으로 남은 생에 대하여 까지도 뇌 속의 공간을 삐집고 들어오기를 시도한다. 냉정한 판단으로 실수는 하지만 반복은 하지말자고  다짐해보지만 서있는 발 뒤꿈치에 힘이 주어지지 않음은 채찍질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들한다. ‘소학에 이르기를 사람이 늘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나물 뿌리처럼 거친 음식을 달게 먹을 수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소박한 생활을 하지만 정신만은 충만함을 향해 나아가라는 ’채근담‘’ 채근담‘에서 말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세지 이다. 그동안 우리는 나물뿌리가 거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경종의 울림을 받아야 한다. 척박한 땅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만의 삶으로 버틴 나물뿌리를 그저 질기다는 핀잔으로 거들떠보지 않았던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혹독한 과정을 거친 뿌리는 우리 인간의 건강을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다면 깨우침의 호미질은 의미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오십중반의 나이에 풀뿌리를 캐 먹었다는 말을 하면 농담 섞인 언어로 비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부모님들 세대에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새파랗게 젊은이가 어디서 주워들은 언어로 이해한 것이다. 물론 배가 고파서 하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간식거리를 찾아서 삐비나 딱주 소나무 껍질 그리고 소나무 열매인 쌀밥 보리밥등을 찾아서 먹었던 시절이 섬에서 태어난 사람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곡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전기도 국민학교 4학년쯤 들어왔고 한참 개발의 붐이 일어 산등성이에 꽂혀진 빨간 깃발들을 간첩이 남긴 신호라 생각하고 지서에 신고한 경험등, 같은 나라의 같은 세대의 사람이지만 자라온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아왔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동네 이장의 불끈다는 방송이 발전기로 자가발전하던 시절에 아홉 시가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사춘기 시절 교환누나가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전화기로 연애질 할 때면 중간에 대화 속으로 파고드는 교환누나가 야속할 때가 있었던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나에게 도시에서 자란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함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과 똑같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곧은길을 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남지않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과거 우리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어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의 우리 나이에 우리 부모님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았는지에 대한 감흥이 없다. 다만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백세시대를 이야기하지만 빈 껍데기의 생을 살지 말아야겠다는 자부심은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신이 신고 있는 키높이 구두가 당신의 진실을 덮어줄 수는 없다. 높다란 깔장의 수고를 덜어주고 진실된 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라. 시선의 높이가 다르다고 하여 당신의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다. 다만 기준점의 높이를 가능한 지점에 맞추고 당신의 현 상황에 맞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가랑이 찢어질만큼 큰 걸음을 걸을 필요는 없다. 주변의 시선이 당신의 그림자를 거둬주지 않기에 오롯이 나의 우산을 꼭 부여잡고 가는 강단이 필요하다. 내가 가야할 길도 제대로 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길을 인도해 줄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하지 마라. 우연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억지로 인연을 만들지 마라.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이 천년을 걱정한다는 성인의 푸념이 오늘따라 가슴깊이 파고드는 이유를 당신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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