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진정한 가치 본문
공동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켜야 할 법과 원칙이 있다.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활자화된 것에만 기준을 두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데에서 오는 오류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추가로 요구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가치이다. 주어진 법과 원칙의 준수가 우리 사는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 질서유지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가치적인 부분에서 사고할 필요성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출현하는 안토니오는 세상의 법과 원칙을 중시하고 우정과 사랑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업을 하는 가치 지향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부정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샤일록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샤일록도 자기는 법과 원칙을 지켜가며 정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이런 나를 경멸하는 안토니오를 싫어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때마침 전재산을 털어서 배에다 물건을 싣고 출항하는 바람에 수중에 한 푼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사채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게 된다. 안 그래도 싫어하던 안토니오가 돈을 빌리러 오자 샤일록은 부당한 대출조건을 제시하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다.
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하면 이자는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로 받겠다는 것이다. 결국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다. 한 달만 있으면 물건을 팔러 나간 배들이 돌아온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샤일록의 계약조건을 따른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 안토니오의 선박들은 모두 침몰하고 그렇게 안토니오는 가난뱅이가 되고 만다. 당연히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고 샤일록은 계약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가지겠다고 재판관에게 말한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재판관은 한 번만 자비를 베풀라고 하지만 샤일록은 눈하나 끔쩍하지 않고 판결을 내려달라고 한다. 이때 바사니오의 아내가 재판관으로 변복을 하고 나타나 샤일록의 계약대로 집행하라고 한다. 단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만 잘라내야 한다. 만일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거나 조금이라도 더 잘라낸다면 샤일록의 전재산을 몰수할 것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결국 샤일록은 포기하고 안토니오는 해방된다.
우리는 사채업을 하면서 고리의 이자를 받는 샤일록을 비난할 수 없다. 법과 원칙의 범주안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수의 우리들도 그런 삶을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에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역 이용하려는 데서 문제는 발생된다. 법과 원칙의 해석의 차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법원이고 재판관이 생겨났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명문화된 법과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법과 원칙이라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태반이다. 그리고 모호한 기준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된다. 요즈음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국을 바로잡기 위한 재판의 모습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재판관 하고 다른 점이 많다. 외압이 작용하여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라는 의심을 하고있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법과 원칙을 뭉개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아직도 그런 것들이 통하는 세상인 것 같다.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법과 원칙이지만 자비와의 조화를 이룬다면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규칙은 있지만 그것을 어겼다고 하지만 벌칙은 다를 수 있다. 정의와 자비의 문제이다.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자비보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면 결국 모두가 자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외"라는 단어가 정의와 자비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예외"라는 단어를 너무나 신임하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 나는 예외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특별하다. 등 자신만의 해석으로 우월감 속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간의 다툼을 함으로써 세상의 법과 원칙의 기준은 더욱 냉정해지고 있다. 법과 원칙과 자비를 조화시킴으로써 "가치"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 것이다.
원칙만 고수한다면 세상은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나 관대한 자비만 베풀다 보면 법과 원칙의 존엄성이 훼손된다.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모두가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혼자만의 "독트린"을 내세우기보다는 조화를 통한 가치창조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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