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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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인정하는삶을살자

용용아리 2023. 12. 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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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중함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살아가는 이유이고 이를 지키기 위한 자기만의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세상을 살면서 위기에 봉착하거나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상대방에게 항복을 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수를 부렸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비열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좋게 평가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말을 잘하고 도술을 부린다거나 사사로운 학설을 주장하며 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인데도 우리는 그 사람이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다는 인식으로 그 사람의 행동은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기도 한다. 또 이사람 저 사람과 소통하면서 자기의 수고와 노력이 아닌 제삼자의 재물과 수고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데도 우리는 이런 사람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하기도 한다. 말재주가 교묘하여 지혜롭게 보이는 사람은 실상 상대방을 속이고 있는데도 거기에 현혹되어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그 사람의 성격이 포악하여 함부로 무기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인데도 우리는 용감한 사람이라며 존경하기도 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며 불의를 보고 눈감아주는 것에 대하여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이처럼 간사한 악행은 아무런 이로움이 없는데도 세상은 이를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고해야 할 인간의 알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새겨야 할 것이다.

반대로 위험을 무릎쓰고 신의를 굳게 지킨 사람은 지조 있는 사람인데도 세상은 융통성이 없이 꽉 막힌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면적이 아닌 정석을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보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낙인 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땀흘려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도 유도리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덕이 많고 베풂을 낙으로 삼고 선량하게 사는 사람인데도 자기의 실속을 챙기지도 못하면서 남 좋은 일만 하는 우매한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의 의인으로 의로운 선행을 베풀면서 많은 선행을 베푸는데도 세상은 이러한 선행을 곱게 보지 못하고 헐뜯음으로써 선행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 하기위하여 혈안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참고해야 할 지침서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아무리 비논리적인 현상이 벌어진다고 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탈모가 심한 사람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하여 머리를 감지 않을 수 없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손실만 아까워하고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 이익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하여 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으니 미리부터 포기해 버리는 것과 같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지금의 처지에서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 함으로써 상황별 대처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긍적인 목적은 편안한 삶을 위함이고 안정적인 항해를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순간순간의 대처능력에 따라 선악을 구별하고 대중 속에 녹아들 수 있는 간사함도 때론 필요하다.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기가 쉽다고 한다. 대나무가 곧고 높이 잘 자랄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마디마디마다 무슨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최고의 높이까지 자랐다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땐 나도 아니어야 한다. 단 내가 먼저 아니라고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살아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가슴속에 불타는 정의는 세상의 논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너무 비굴한 삶이지 않느냐며 따질지 모르지만 일단은 살아내고 나서 따져볼 문제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자가 승리자이고 우리는 이들만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화신으로 살아보겠노라 열정을 보인적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굴레가 아무리 무겁다 하더라도 나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무디어 지는 젊은 날의 패기는 어느덧 세속에 물들어 그 속에서 안주하고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 모두가 인정하는 삶이 곧 나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의 시선은 나와 같은 시선이 아니다. 나의 시선으로 살아가다보면 많은 굴곡을 건널 것이다. 세상의 시선에 나를 맞추고 그 속에서 나의 시선을 찾아보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다. 혼자서 걸어가는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들에게 온전히 바라지는 않지만 내 것의 일부라도 내어주어야만이 작은 눈길이라도 던져준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가슴속에 걱정거리는 오롯이 혼자서 감내해야 하기에 비워낸다고 하여 비워지지 않는 공허함도 혼자서 안아야 한다.

현명한 삶을 위한 정해진 길은 없다. 어울려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돌부리는 걷어차기보다는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 당신손에 쥔 곡괭이는 돌부리를 캐내는데 쓰이는 것이 아닌 밭이랑을 일구는 도구로 쓰여야 함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안개 자욱한 앞날을 상상하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오늘을 소화하는 것이 먼저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오늘도 살아내는 당신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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