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메멘토 모리 본문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에 대하여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한다면 못할 것이 없으며 설사 못한다 하더라도 죽음을 맞이하면 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으니 잠깐의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이 '메멘토 모리'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단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난 후에도 나에게는 닥치지 않을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많은 고뇌와 방황을 하고 있지만 정작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브랜다이스 대학 사회학자 모리 슈워츠 교수는 말한다.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를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알게 된다고 하였다. 철학적인 언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하게 죽음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곧 살이 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리 교수와 그의 오랜 제자 머치가 매주 화요일 날이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강의가 아닌 대화를 하는 과정을 기록한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나서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읽었던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이 생각나서 다시 펼쳐 보았다. 죽음을 앞둔 이어령 교수와의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인터뷰가 모리 교수의 인터뷰하고 똑같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말한 이어령 교수가 모리 교수의 책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생명을 끝내지만 말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고 했고 모리 교수는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는 건 아니다고 하였다. 두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생각들이 공통된다는 것에 책이 출판되는 시간을 따져보니 이어령 교수님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읽었던 것이 분명했다.
세상은 나를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우리는 살고 있다. 내가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으며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고단함과 방황을 겪게 만들고 있으며 갈등과 방황 속에 헤매게 만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조장하고 전쟁 같은 사투를 벌여야 겨우 지탱할 수 있는 세상 속에 놓여있다. 루게릭 병이라는 죽음의 병마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세상이 슬퍼하지 않음에 모리교수는 배반감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난과 방황을 한다 하더라도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주저앉아있는 우리를 일으켜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입술을 굳게 다물어야 한다. 니라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자기에게서 죽음을 부정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무게감도 함께 늘어났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대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순서대로 가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한 각자마다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의 보험을 설계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씩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알게 된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날은 기억하고 기념한다. 하지만 우리가 죽는 날에 대하여는 알지 못할뿐더러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 먼 훗날의 죽음보다는 지금 당장의 시간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느라 인생이 의미를 찾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씩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내서 정상에서의 기쁨을 만족하려는 순간 죽음을 부르는 병마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듣곤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절망하다가 이내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게 되고 그동안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려는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독백을 접하기도 한다.
죽음의 문턱이나 시한부 인생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현실의 고단함 때문에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본 명제일 것이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핑계로 죽음이라는 명제로 현실을 왜곡하려 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남아있는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지우지 못할 흔적들을 남기면서 지금 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흔적들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흔적들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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