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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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을 맞으며

용용아리 2024. 3. 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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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라고 하면 우리는 겨울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면서도 의례히 꽃샘추위가 한두 번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겨우내 입었던 옷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심지어 5월 까지도 미루는 사람도 있다. 3월도 중순을 향하여 가고 있고 추위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오늘같이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은 생각이 더 많아짐을 느낀다.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계절의 변화처럼 뚜렷하게 구분선을 긋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흘러가고 있는지 모른다. 봄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여름이 오고 가을인가 싶더니 다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 우리의 인생을 감싸면서 지나가고 있다. 경력전환을 맞이하여 인생의 절망 끝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온 시간이 벌써 일 년 여가 지나갔다. 곧 죽을 것만 같았던 고통도 이제는 만성이 되어가고 있다. 자리하고 있는 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과 그래도 그 자리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푸념이 지금 와서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꽃샘추위가 숨어있는 3월

설계도면을 그리자

지금껏 한번도 생각하거나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하여 당황으로 대처하기에 바빴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흘러간 시간들 속에서 후회만이 밀려온다.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후회하지만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에 고민만 깊어진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시간들 속에서 그래도 나를 붙잡아 주었던 것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느낌을 글로 쓰면서 블로그에 날마다 올리면서 횟수가 늘어남에 자족할 수 있었고 훗날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꺼리를 만들고 있다는 부심이 그나마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같다. 그렇다고 힘듦의 시간이 지나간 것은 아니지만 멘털을 붙잡고 버티다 보면 지나가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도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 본다. 현실적인 문제와 철학적인 논리 사이에서 내가 서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은 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불러올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물감이 아직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색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몸의 움직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좋으련만 마음으로만 성을 쌓고 있다. 설계도면없이 건축하는 건물이다 보니 완성도에서 부족함이 드러나지만 마음의 설계도는 품고 있기에 정신을 집중하여 본다.

준비하지 못하고 출발했지만 널부러져있는 돌멩이,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어서 다행이다. 끊임없이 불어 오는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 걸음씩 옮기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끄적이는 낙서는 불안을 잠재우는 이불이고 볼펜의 잉크똥은 격전의 흔적이라 여기고 깊은 들숨을 마셔본다. 호흡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날숨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준다. 작년에는 알지 못했던 오늘이기에 핑계를 만들 수 있지만 내년의 오늘은 더 이상의 변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여 지금을 해결하지 않고 미루기로 피한다면 내년 오늘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오늘의 아픔은 내일을 위한 강한 발전을 위한 과정이라고들 한다. 지금 어렵다고 하여 희망마저 잃지 마라고 한다. 책이나 강연등에서 좋은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고 있지만 현실과 이론의 괴리에서 오는 소외감은 어쩔 수 없다. 주변 시선의 따가움이나, 버리지 못한 상대에 대한 배려심, 그동안에 안고 살았던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할 여력도 없으면서 갈등하는 나 자신이 아직 소크라테스인 양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겨울옷을  정리하지 마라

3월의 바람은 한겨울의 바람보다 더 매서울 수 있다. 내려놓은 감정 탓으로 피부의 두께는 얇아져 바람을 막지 못하고 있다. 욕망의 외투를 벗어내야 하지만 현실의 차가운 바람끝이 매무새를 다잡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목표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잘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행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고통으로 점철되고 그 고통을 잠시 피하고자 진실을 덮어버림으로 또 다른 고통을 안고 오게 된다. 진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지 종종 볼 수 있다. 과거 선조들의 절개나 현재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대가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자기가 믿는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꼭 진실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당신의 욕망에서 비롯한 잘못된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유는 세웠던 목표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더욱더 혼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욕망의 조절을 통하여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 나올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당신이 행복해 지려거든 재산을 늘리지 말고 욕망을 없애라고 하였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다. 잘 살고 싶은 욕망의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쉽게 오질 않고 고통과 함께 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고통을 받지만 그것이 자기의 욕망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감수하려 한다. 욕망은 조절할 수가 있다. 감사함을 실천하면서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욕망을 상향조절하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은 하향조정 하면서 유혹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생의 게임에서 당신이 승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보다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더하여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고민과 방황의 늪을 스스로 걸어 나오는 날 세상은 당신의 욕망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3월의 바람을 맞으며 괴로움 속에 방황하며 자판만 두드리지만 욕망을 덜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함의 실천을 행하라고 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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