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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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걸어라

용용아리 2024. 4. 2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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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한 때는 하루 만보 걷기를 실천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 걸었던 적이 있다. 캐시워크라는 앱을 깔고 쌓이는 포인트로 통닭까지 먹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삶 속에 들어가다 보니 예년과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다시 고쳐 잡으려 했던 마음 가짐을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항상 마음은 있지만 실천의 행동이 따르지 않고 있다. 오랜만에 아내를 따라서 천변을 걷고 왔다. 만보를 채우는 것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음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걷기를 추천하며 같이 실천해 보자고 하였던 지난날 들에 대하여 스스로 반성해 본다.

 걷기는 운동이 아니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 이라고 한다. 자기의 편리에 의해서 지금의 상황을 합리화시켜버리는 능력치가 뛰어나다.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마음의 위안을 삼을만한 핑계를 만드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것이다.  반성하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또다시 실패할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이 복잡하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걷기를 하라고 하였다. 인간은 두 다리를 이용하여 이족 보행을 할 수 있게 창조되었다고 한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직립 보행을 하는 생명체는 많지 않다. 인간은 태초에 생존을 위한 수렵 생활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보행 활동은 자연스럽게 수명의 연장을 돕기도 하였다. 문명의 발달이 이루어지기 전에 인간의 하루 평균 보행거리는 십 킬로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인들은 오 천보 이하로 걷는다고 한다. 그것도 건강에 신경을 쓴다고 하는 경우이고 나머지는 훨씬 못 미치는 걷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걷기에 대하여 운동 이라고 하였지만 걷기는 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당연한 움직임을 별개의 것이라 명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워낙에 걷기에 대하여 소흘 하기에 인간 스스로가 운동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인간은 걷는 행위를 통하여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 까지도 생겨났다. 특히나 중년 이후의 나이에는 걷는 것이 최고의 운동이라고 한다.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만성질환을 감소시켜주고 인지기능을 좋아지게 만들며 우울증이나 수면장해, 무호흡증 등의 질환을 감소시켜 준다고 한다.  연구 학자들에 따르면 걸음 천보당 위와 같은 만성질환을 십 프로씩 감소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팔천에서 만보를 걷는 것이 적당하고 무리해서 억지로 걷는 것도 삼가라고 한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 한다. 무릎 관절의 연골이 남아 있어야 걸을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걷기에 대한 중요성이 덜하지만 중년 이후에는 근육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일어나 걸어라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인생이다. 자기 관리를 통하여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의 수양을 쌓고 배움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지혜를 겸비하며 다가올 성공의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건강이다. 건강에 대한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 애초에 운동이라는 것은  기본 보행을 하지 않은데서 착안한 인간이 걷지 않으려면 다른 행동으로 걷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걸어간다는 표현을 한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걸어야 한다. 걸어야 살아 있음이 증명되고 뭔가를 하고 있음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생명의 연장을 위함이 아니고 내가 살아 있고 행동을 하고 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함이다. 일어나 걸으라는 것은 좌절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 한다. 고민과 방황의 시간이 지속된다면 무작정 걸으라고 했다. 걷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 몸에 생성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걸을 수 있음에도 걷지 않고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변칙 수단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관절의 연골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지로 일어나야 한다. 이불속에 누워서 머리로만 걸을 것이 아니라 박차고 일어나 세상의 공기를 흡입해야 한다. 
  어제의 피곤함이 아침을 붙잡지만 이겨내야 한다. 터질것 같은 뇌간에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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