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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야하는 이유

용용아리 2024. 9. 1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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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의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 안에는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비터 플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어가고 있다. 심리학자인 저자가 직접 경험한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존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심리학적 통찰을 다루는 자서전이다. 인간의 삶 중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면서도 거기에서 찾아낸 인간의 의지와 삶의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내용이다.

 억압된 자유가 단지 수용소라는 폐쇄적이고 강제적인 요소에 의하여 외부적으로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래서 이같은 인간에게는 일말의 자존심이나 자유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뀔 수 없는 진리가 있었으니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환경에서 아무리 최악의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 환경 속에서 길을 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한다. 최악의 강제 수용소이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존엄성은 고통을 참고 견뎌내어 시련을 가치 있게 만들고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시련과 고통에 대하여 쉽게 무너지고 이를 자신이 아닌 세상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자행을 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삶의 의미를 부여받기 위한 과정은 시련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과 절망적인 이유는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정해진 기간이나 목표에 의한 삶이 아닌 기약 없는 기간 속에서 희망의 끈을 부여잡지 못한 데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에 언제까지 갇혀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지만 정해지지 않는 수용소 생활 속에서 언제 죽어나갈지 모르는 상황들이 절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력전환이나 실직의 경험자가 방황하고 혼돈 속에서 헤매는 것은 자신이 언제 다시 취업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지에 대해 알 수가 없고 언제까지 백수의 삶을 살아야 하나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미래에 대한 대비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고 그때가 좋았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지만 이는 자신을 오히려 퇴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를 불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는 것이다.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주어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희망과 기대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는 구원자가 될 것이다.

 희망과 용기는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한다. 절망적인 수용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혹독한 시련을 버티게 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 남아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희망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여 몸 안의 잠재하고 있던 병균의 증식을 방치하게 되고 이내 삶을 놓아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답을 해야 한다.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기대를 품으면서 의미를 부여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 현대사회의 모습이 평화롭고 자유스러워 보이지만 삶의 현장은 전쟁 중이다. 그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목표와 희망을 꼭 붙들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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