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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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라이프의 희망여행

26차 88회

용용아리 2024. 10. 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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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서로 만나다는 것은 관계형성의 한 과정일 수 있다. 그 관계 속에 어떤 목적을 담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 성격도 달리 해석된다.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접촉을 뜻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요한 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라고 하지만 알 수 없는 그 인연에서 비롯된 만남의 시간들이 우리 인생의 반을 차지하도록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그 스물 하고도 여섯 번째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의 설렘을 낯선 휴게소에서 내린 따뜻한 바닐라 라테 한잔으로 달래 본다. 누구에게 바라는 목적도 없이 그저 좋아서 시작된 만남은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도록 끈끈한 점액을 만들어 내고 마법에라도 홀린 듯 276킬로미터를 달려가고 있다. 만남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이 이끄는 곳이기에 엉덩이를 꾸깃꾸깃 접어가며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쉬엄쉬엄 한숨 돌리라고 채근하듯 소노빌청송에는 보슬비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8시간을 달려서, 3시간 10분을 달려서, 4시간 30분을 달려서, 안동역을 찍고 1시간을 더 달려서 다들 510호, 511호에 모이고 그렇게 힘듦을 감당할 수 있는 만남의 순간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인사가 건강이고 건강이 주제이다. 보슬비를 뚫고라도 트레킹의 임무는 완수 해야 한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느샌가 우산을 받치고 뛰 다르고 있었다. 계획된 거리만큼은 아니었지만 핸드폰에 찍힌 걸음수는 꽤 많였고 사과의 고장답게 거리마다 사과밭과 판매점이 우리의 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물론 보슬비의 영향도 있었지만 시나노골드, 감홍의 맛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년에 한번씩 만나는 자리이기에 그만큼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만난다. 작년의 만남에서 오늘의 만남까지의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의 모양을 한 자리에서 풀어내야 하는 시간에 술과 고기가 없으면 섭섭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것도 오랜만이고 회비라는 이유로 최상의 품질로 내 장기에게 기름칠을 시작으로 삶의 모양새를 뽐내어 본다. 처음부터 너무 의욕을 불사를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총무가 있기 때문이다. 부족함보다는 넘치는 사치를 오늘만큼은 부려도 좋으리라. 너무 많다고 너스레를 푸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는 분명히 보았다. 행복을 머금은 미소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보이지 않는 국룰이 있다. 만남을 가장한 식사와 음주의 행사를 끝내고 나서는 노래방에 가서 가무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음주가무의 문화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조그마한 편견이 있었다. 노래방에서 술 한잔 마시지 않고는 즐거울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 4병 놓고도 아주 잘 즐기는 것이었다. 역시 편견은 깨라고 있는 것 같다. 노래방에서 술을 마셔야만 하는지에 대한 논리는 노래방 사장님의 치밀한 전략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시간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다음팀을  위하여 우리가 희생한 무려 7분의 시간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들의 진심을 확인하는 비용으로 지불하였다.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남의 시간들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래방을 빠져나와 끌리듯 빨려 들어간 편의점의 바구니는 여기저기서 정리된 물건들을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깨지는 것은 회비요, 샘솟는 것은 도파민이니 오늘만큼은 세상이 모두 다 우리 편이다. 마음껏 즐기고 마음껏 풀어내고 싶었지만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체력의 한계는 10시 30분에 침대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버린다.

 오랜만에 일탈을 한다한들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지만 그것마저도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에 아침밥을 먹네 마네를 놓고 설전을 펼치고, 사우나를 왜 가네, 이렇게 오래 걸리네, 우리는 조금밖에 하지 못하고 서둘러 나왔네, 를 따지면서 들이키는 북어 해장국은 조금 짰지만 좋았다. 평소 하지 않았던 행동이나 먹지 않았던 음식들을 먹으면서 일탈을 행할 수 있음에 지금 우리의 만남은 그저 행복하다.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삐져서 먼저 나가버린 친구가 잡아준 식당에서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고 주산지를 향할 수 있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곡과 저수지의 둘레길을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주산지 라고 한다. 우리는 가벼운 산책길을 걸으면서 추억으로 사용될 사진을 남기면서 잠깐의 배꺼짐을 수행 중에 있다. 어딜 가나 그곳이 그곳이라는 말이 있지만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누르는 셔터는 하나 둘 셋을 외치지도 않고 정형화된 사진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색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그런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지금 이 순간은 가능하다.  청송이라는 지역이 사과의 고장이라고 한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과밭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전두엽에서 이미 계획안을 작성하여 무조건 한 박스 챙겨가야 함을 명령하고 하달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맛보기 사과와 덤으로 박스를 채워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보부도 당당하게 어깨 위에 올라선 박스는 15미터를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차를 가지고 오라고 외치고 만다.

 11.7키로그램이나 되는 사과박스를 어깨 위에 올려놓았으니 그 무게를 감당하느라 내 안에 축적되었던 에너지가 북어해장국으로 충전한 지 2시간 30분 만에 고갈되어 버리고 급하게 우리는 달기약수식당이라는 주유소에 옻닭과 토종닭의 빨대를 꽂고 만다. 그렇게 허겁지겁 30분 만에 닭 세 마리를 작살내고, 다음 타깃을 커피숍으로 정하고 그곳을 찾아 어슬렁 거리기를 2분 만에 마땅한 가게를 발견하고 이응커피의 쿠키와 커피를 박살 내면서 어제와 오늘의 일정을 회상하고 다음의 만남을 예정하면서 이제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임을 확인하는 자릴 갖고 있다.

 다시 8시간을 달리고,  3시간을 달리고, 1시간 30분을 더 달리고, 왔던 것처럼 안동역을 찍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헤어짐의 시간이지만 모두가 행복하다. 트렁크에 실린 사과박스의 무게만큼 우리 만남의 우정과 의미와 가치가 또 한 뼘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년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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