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세컨라이프친구에게 본문

카테고리 없음

세컨라이프친구에게

용용아리 2023. 10. 1. 14:49
728x90
반응형
SMALL

 

세컨라이프의 친구에게

요즈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단어가 인생과 삶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나오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함이 크지만 사회적 제도적 경제적 상황들에 대한 불만이, 결국엔 자조적인 한풀이로 끝맺음을 하고 만다. 아울러 내가 느낀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위대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 개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 그리고 성공의 힌트를 줄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남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내마음속에 응어리를 넋두리로 풀어냄으로써 남은 나의 길을 바르게 잘 가보자 함이 클진데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자그마한 욕심이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살아왔으니 당신들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생각하는 것들을 경청하고, 정년을 앞두고 고민해야하는 사람들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는지, 그리고 당신의 위치를 찾아보고 계획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현재 보여지는 당신의 위치와 나라는 인간의 위치 등등 혼자서 가슴속에서만 담고 있기에는 너무 벅찬 이야기를 자판으로 두드려 보는 것에서 당신이 거둘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컨 라이프를 살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평가를 내릴수 없다. 지난 삶보다는 잘 살아보겠노라 다짐은 했지만 아직은 보이지 않은 결과 때문에 누구에게도 나의 삶을 보면서 당신도 변해보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결과로 성공이라는 단어로 지난 삶을 보상받았다고 생각될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것과 정해진 미래는 없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니라며 과감히 떨치고 나올수 있는 용기있는 변화는 엄청나게 다르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조직의 발전과 조직원의 변화를 위하여 고군분투 했지만 보이지 않는 변화의 모습과 마상을 통한 정신적 쇠퇴와 그로 인한 신체적 고통까지 모든 것이 바깥으로 향하고 있음을 과감히 받아들인 백근시대를 보면서 부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가 경제적으로 풍부해서 이 조직생활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삶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어서 벗어던진 조직이었다면 이렇게 부러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당장에 해결 해야 할 경제적 여건과 가정과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감 등의 무게가 한짐인 가운데에서도 변화를 위한 도전을 했다는 것에 부러움이 크다. 주변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 수는 없지만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도, 조바심 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나와는 다른 상황에서 세컨라이프를 준비하는 백근시대를 부러움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자리잡고 있을수 있다는 착각으로 살고 있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버리면서 살아왔지만 어찌보면 우리도 누군가를 밀어내고 이 자리에 있는 것 처럼 다른 누군가에 의해 우리도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준비하고 기회를 엿보다 밀려나기전에 버리고 나올수 있는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누구를 탓하지도 말고, 원망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세상인 것이고 그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의문속에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창조의 범위가 이제는 인간자체를 능가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그것을 걱정까지 하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AI의 창조물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데도 과거의 자신에 얽매어 버리지 못하고 아등바등 지키려 발버둥치는 우리는 빨리 자각하고 자신을 파괴해야 할 것이다. 본능적으로 갖고있는 소유욕이라는 감정을 파괴하고 비워낼수있는 성찰을 터득함으로써 새로움을 채워넣을 수 있도록 변화를 꿈꿔야 한다. 자기만의 독트린은 성공이라는 탑 구석진곳의 볼트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옳지만 다른 사람도 옳다는것을 인정 해야한다 당신의 볼트와 상대의 나사가 세상의 밸트로 연결될때 톱니바퀴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저 당신은 윤활유를 준비하기만 하면된다. 목표를 세우고 실천을 계획함에 있어 사전준비는 철저하게 해야한다. 당신만이 갖고있는 노하우는 다른사람을 위해 쓰여져야 함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 인정해주는 당신만의 능력을 다른사람이 더욱 공고히 해줄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나부터이다. 그첫번째가 비움이다. 온전히 비워버려서 궁하게 만들어라. 오십중반을 넘도록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했고 지금도 채우기 위한 방황을 하고있는 나의 고물상을 보면서 후회도 많이했다. 누구나 무엇이 되었든 모으고 채워 넣으면 언젠가는 다 필요하게 쓰일 거라는 착각을 하게된다. 세상에 태어나 쓸모를 다한 물건을 우리는 고물이라 한다. 이고물은 새롭게 태어나기위해 고물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할일을 다한 고물들을 쌓아놓기만하고 재활용센터에 보내지 않는다면 그 고물은 영원히 고물로 밖에 취급되지 않게 된다.

 

열심히 모아놓은 고물을 야적장에 높이 쌓아놓고 고물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린다면 더많은 야적장을 구하느라 비용과 노력만 더들어갈 것이다. 욕심이라는 것이 발동하여 작은이익을 반복하기 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유욕이 진실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약간의 이익이 달성되었다면 비워내고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워넣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동안 종이박스를 모아서 이문을 남겼다면 이번에는 철근을 모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품목에 대한 연구를 마음을 열고 학습을 통해 미래를 상상해보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 기본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온고이지신’이라는 고사성어는 옛것을 존중하되 그것을 새롭게 하라고 하였다. 옛것이라고 하여 그저 고물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재활용을 통한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도록 폭탄을 터트려 보자. 책속에 화약이 있고 글 속에 심지가 있으니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방아쇠만 준비하면 된다. ‘모처럼’ 이라는 단어가 지금의 나에게 맞는 단어일지는 모르겠으나 명절을 맞이하여 며칠째 휴가를 보내고 있다. 휴가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자체가 감사하기 까지 하다. 과시욕으로 살아왔던 지난 생활의 때를 완전히 벗겨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쟁여놓은 고물들을 비워내고 있는 중이다.

 

일년에 한두번 잘 해야 서너번 다녀오는 곳이 있다. 그나마 옛날 감성이 살아있어서 향수를 느낄수 있는곳, 그곳은 어릴적 내가 나고 자랐고 아직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 다녀 오는것이 언제부터인가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하는곳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오십중반을 넘어가는 지금의 나이에 고향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다가오는 감정은 어떤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명절이라고 하여 바리바리 선물상자를 들고 방문하는 고향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작년과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찾아가는 고향은 그동안 수십년을 다녀왔던 고향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아니 없는게 아니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누구나 특히 가족은 내가 안정된 직장에서 안정된 삶을 살기를 기원하지만 그 안정됨이 영원히 보장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그 길을 벗어난 것에 대한 걱정부터 앞세우기 때문에 그걱정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예전의 모습으로 포장해 ㅂ여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과거조직의 인연과 현재의 인연속에서 명절을 맞이하다보니 보여줄수 있는 선물은 많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같이 길을 나섰다. 과거에 비하면 엄청 편하게 가는길 이지만 막히는 차안에서 과거의 경험을 잊어버리고 왜 이렇게 막히는지에 대한 한탄만 늘어 놓고 있었다. 그렇다고 고향에 빨리가고 싶어하는 마음도 그리 크지않으면서 힘들다고 이순간을 토로하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두시간이면 도착한 고향을 다섯시간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가고 오는길에 대한 생각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형제에 대한 안부가 뒷전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각자마다의 뿌리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것을 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갈망이 너무나 커서 뿌리를 잊어버리는 살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설날 다녀간 이후 나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이 항상 같은곳이지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은 달라졌음을 느낀다. 나의 삶이 바뀌었다는 사실 정확히는 나의 직장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형제들에게는 걱정이었고 새로운 기대로 다가왔다. 아직 보이지않는결과이기에 당당한 표현을 하지못하고 그저 숨기기에 급급한 내모습이 정말로 잘살아서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 한 구석에 새겨 넣는다. 그렇게 본가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처가를 거쳐서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가 고향이라는 장소에 모였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삶속에서 언제나 그자리일줄 알았던 세월이 어느덧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음에 덧없음을 느끼기도 한다.

 

변화의 첫 번째는 나 로부터이다 라고 한다. 내가 먼저 변화의 시도를 하고 변함으로써 상대에게 전파를 하는 것이다. 어느 유투브에서 인간은 요구를 하면서 성장을 꾀하게 되고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변화를 시작한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나에게 떡을 가져다 주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요구를 끊임없이 바라고 구할 때 상대의 구원의 손길을 잡을수 있는 것이다. 하여 나를 비워냄으로써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창조하고 요구함으로써 채워넣기를 수행해야 한다. 과거의 나의 성공의 경험이 당신의 미래를 방해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버리지 못함으로써 새로움을 거부하는 오류를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비우는 방법을 책속에서 찾아보고 글속에 녹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수용해야 한다. 거부보다는 수용함으로써 더나은 발전의 기틀을 수립할수 있는 것이다.

 

가끔씩 쉬는날이나 계절이 바뀔 때 쯤이면 한번쯤은 대청소를 하거나 집안 정리정돈을 하고싶을 때가있다. 봄맞이 대청소의 핑계를 대거나 마음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 여태껏 괜찮아 보이던 환경이 갑자기 지저분해 보일 때가 있다. 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거나 창틀에 찌들어 있는 먼지를 물로 씻어내는 행위도 비움의 일종이다.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쌓아놓은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한참동안이나 입지않고 쌓아두기만 했던 겨울옷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집어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년까지 입었던 옷을 과감히 버려버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야심차게 키워보겠다고 들여놓은 화분이 하나둘 죽어가는것을 보면서 빈화분을 버리지못하고 한쪽에 쌓아두고 다음 봄을 기다리는 사람, 다시는 화분을 키우지 않겠다고 과감히 버려버리는 사람의 경우도 누가 더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버려야만 새로운 것을 채워넣을수 있다는 것이다. 사물이든 마음의 고물이든간에 말이다.

 

기나긴 명절의 끝에 고향집을 다녀왔다. 언제나 그렇듯 고향이라는곳은 항상 아낌없이 주는곳임이 틀림없다. 바리바리는 아니어도 매번 트렁크에는 고향의 향기를 가득 채워온다. 이 향기로 또다시 힘을내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어 본다. 날마다 수십 수백번을 열고 닫았던 냉장고가 오늘따라 가득차 보인다. 무엇이 들어있기래 새로운 고향의 향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일까 궁금해 하면서 하나둘 꺼내어 보면 과간이다. 언제 넣어두었는지도 모를 꽁꽁얼은 생선들과 고기, 떡, 양념들까지 거실전체를 차지하리만큼 쏟아져 나온다. 먹지 못해서가 아니라 뭐가 들어있는지 조차 몰라서도 비우지 못한 것들이다. 그나마 음식이라 유통기한이 있어서 버리는데 주저함이 덜하다. 반절은 버려야 할 것들이다.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채워넣을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기억속에 사로잡혀서 새로움을 거부하고 지낸세월이 지금의 나의 모습인 것이다. 궁하면 변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우리는 궁함을 느끼지 못하고 궁함에 만족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우리 안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결단은 거창한 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의 연속선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두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할 때이다. 과감히 버릴수 있는 용기, 막연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자신감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다. 당장의 결단이 미래를 책임진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가른다고는 하지만 매번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재를 채용할 때 기준이 얼마나 많이 실패를 했느냐 라고 한다. 실패를 많이 해 봄으로써 실패 확률을 줄일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한번 실패한 사람을 영원히 실패자로 낙인시켜 버리는경향이 있다. 먼저 실패를 맞보았기 때문에 다시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고 하였다. 수많은 거인들의 인생도 실패의 연속에서 탄생했다. 실패의 교훈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도록 격려하고 베풀었기에 성공을 지킬수 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실패를 경험해 보자.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타인의 시선 때문에,라는 핑계는 냉동실 안쪽의 고깃덩어리와 함께 버려버리는 용기로 바꿔보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