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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살리는 법

용용아리 2024. 8. 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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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고향은 대한민국 남단에 있는 섬이다. 거기에서 태어나고 중학교까지 섬에서 자랐으며 육지에 대한 동경이나 그리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내가 사는 세상의 범위는 현재 내가 생활하고 있는 이곳이나 이웃 섬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왔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점점 도시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지만 그때당시 상황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도시생활에 익숙해지고 가끔씩 지치고 힘들 때면 안주거리 삼아서 이야기하던 장소에 지나지 않았던 그런 섬이었다. 육지 사람들하고의 생활상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가끔씩 섬생활에 대한 동경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너도 한번 거기서 살아보라는 식의 부정적인 표현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명의 발달이 시작된것이 국민하교 4학년쯤으로 기억된다. 마을에 전기공급마저 없어서 촛불도 아닌 초코지병에 기름을 넣고  심지를 넣는 호롱불로 생활했고 그마저도 부엌과 안방사이에 올려놓고 두 개의 공간에 최소한의 빛을 이용해 생활했다. 전기공사를 한답시고 들판과 산속에 빡간색 깃발을 표시해 놓은 것을 보면서 간첩이 표시를 했다고 하여 지서에 신고하여 생장을 받은 기억이 있다. 섬이라고 하여 육지사람들은 섬안에서 축구는 어떻게 하냐는 등 상상 이외의 동경을 언급할 때면 댓구를 회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포장 도로나 산길을 통하여 학교를 다녔고 어린 시절 놀이 문화라고 한 단면 자연 속에서 자연과의 동화를 통해 스스로의 놀이문화를 만들어 놀기도 하였다. 나뭇가지를 잘라서 칼싸움을 하고 대나무를 잘라서 낚시를 하였고 간식거리가 없어서 삐비나 딱주를 캐 먹었고 소나무 껍질을 껌삼아 씹었다. 따로 정해진 놀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저수지나 갯벌에서 새까맣게 피부를 그을리면서 놀았고 조개나 게를 잡아서 와야 부모님에게 옷을 망쳤다고 혼나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다. 지금은 갯벌체험이라는 고귀한 단어를 쓰지만 삶의 일부였던 우리의 지난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너무나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때당시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것이 일반화되어 있었기에 지금은 추억이라 말할 수 있다. 같은 또래 도시의 중년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소설을 쓴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비참하게 살았던 과거에 대하여 위로를 받으려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어린 시절을 섬에서 그렇게 자라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랑할 것도 없다. 하지만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중학교까지 마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면서 섬생활의 익숙함이 도시화가 되어가고 그렇게 나의 고향도 문명의 발달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에 두번 다니던 여객선은 사람만 겨우 싣고 왕래하였지만 자동차를 싣고 다니는 배가 생기고 이제는 육지와 다리가 연결되어 시도 때도 없이 오갈 수 있는 곳이 되었고 심지어 관광지가 되고 있다. 그곳을 처가 식구들과 여행을 했던 것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삶의 문화와 사상이 바뀌고 도시생활에서 지친 이들이 다시 돌아오고는 있다고 하지만 고향이 주는 의미에 대하여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금 되짚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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