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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라이프백일상

용용아리 2023. 7. 2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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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라이프 100일 상차림’

자그마한 케익은 없었을 지라도 생명의 탄생과 100일 동안이나 버텨온 노고를 치하하는 상차림을 나도 받았을 것이고 이어서 돌잔치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 때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럴 거였다는 상상을 해본다. 부모님을 통해서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말은 듣긴 들었지만 말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이 태어나고 왜 100일째 되는 날 상차림을 하였을까? 에 대하여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못살던 시절에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여 인간이 태어나도 그 생명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라 100일 동안 살아 냈으면 이젠 안심해도 되겠다는 의미에서 자축을 했던 것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7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의 실제 나이와 신분증 상의 나이가 틀리는 경우도 이와 마찬 가지로 태어 나고 1년정도 기다렸다가 살아 있으면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렵게 세상속으로 태어나와 용케도 버티어 내고 지금 여기까지 살아온 우리는 스스로 에게 성공의 잔치상을 수여해야 한다.

“인생시계”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시계에 비유하여 표현한 단어이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는 말이 너무나 익숙하다.아니 당연히 그럴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지 오래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염려는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나역시도 그중에 한사람이다. 인생시계에 의하면 하루24시간을 나이로 나누어 표현 한 것인데 24시를 100세라고 했을 때 50세를 12시, 62.5세를 15시, 75세를 18시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54세인 나를 비교 해보면 나의 시간은 12시 20분쯤 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이 오묘하게도 설명이 되는 듯 하여 어이가 없을 정도다. 인생시계 12시가 조금넘 은시간 우리는 무엇을하고 있었던가! 점심을 먹고 있던가, 아님 담배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가, 아님 아직 못다한 업무를 마저 처리하려고 서두르고 있던가. 하여튼 이시간은 한 템포 쉬면서 여유를 갖을 수 있는 시간임은 틀림없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사무실 밖에나가 하늘을 쳐다 보면서 봄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이면서 최고 방심의 순간 이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인생을 살면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배웠고, 정답이 있으면 오답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고, 이렇듯 우리는 살면서 모든 현상에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고 모르고 살아왔다. 배부르게 배를 채우고 커피잔을 들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을때, 이에 반하는 우리를 위협하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오전일과를 마친 “뇌”라는 공장가동을 잠시 멈추고 오후에도 잘 돌아갈수 있도록 기름치고 닦아줘야 하는데,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잘 돌아가겠지? 방심하고 있을 때 사건은 발생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는 것이 우리들 아니 나의 현재 모습일 것이다. 이렇게 내 27년 직장생활이 마감 될줄은 이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직장 에서의 왠만한 지위에 올라서 조직의 바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상대방 에게 오해의 소지가 발생하게 되었고 아직 발생 하지도 않는 결과예측의 사건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루 아침에 장기간의 휴가를 얻었던 것이다. 다음날 일어나서 갈곳이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려웠고, 너무나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사무실 책상 정리도 하지 못하고 다음에 와서 정리 해야지 했던 것이 끝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내 물건을 인계 받았다. 2022년 12월 30일로 기억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갈곳이 없던 나는 정말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을 연출 해야 했다. 천변을 두시간 정도 걷고 사우나 들러서 한숨자고 도서관에서 방황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진짜로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갈 거야? 나가면 뭐할건데? 혼자서 자문자답 하면서 해답없는 날들로 인생시계를 돌리고 있었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싸워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직장 생활을 통하여 샇아왔던 커리어와 동료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나의 욕심으로 조직 전체를 흐트릴 수도 없었기에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사람은 죽으란 법은 없었다. 구원의 손길이 나를 부르고 있는게 아닌가! 아니 구원을 요청할 사람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 직장에 있을 때 고객으로 만나 거래해 오던 건설분야의 시행사 대표가 예전부터 힘들면 나와 함께 하자고 빈말 일지라도 가끔 언급 했었고 최근에는 자산운용사를 설립할 예정인데 내가 필요하다고 와 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약속만 했기 때문에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마냥 손 놓고 처분만을 기다리면서 있을수 는 없어서 바로 자격증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현실로 이루어 질지 모르지만 언급했던 자산운용사를 진짜로 설립을 하게 되면 필요할 것 같기도 해서 도서관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투자자산운용사”다행히도 금융이나 부동산쪽은 다뤘던 분야라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외투자,파생상품,대안투자,투자분석등 생소한 분야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절실함이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하루 8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학생신분 이었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엉덩이 붙이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두달여 동안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했고 그사이 약속한 시간 22년 2월 28일자로 나는 백수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갈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쩔수 없었다. 자격증 시험도 치르고 물론 5점차로 떨어 졌지만, 그 준비하는 시간 동안은 헛 생각 하지 않고 보낼수 있는 시간 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그렇게 또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내가 일할수 있는 사무실 정리 작업의 시간 동안 기다리라고 한다.그 래서 읽기 시작한 것이 책이다. 책 속에서 발견한 것이 블로그다. 우리에게는 전환이 필요 하다는 것을 이때서야 알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기나긴 휴가를 받고 방황의 시간으로 보냈어야 할 기간 동안 책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절친으로 찾아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이 친구는 그전부터 나를 찾아와 계속적으로 함께 하자고 졸랐지만 나의 무지가 알아보지 못했을 수 있다. 나의 상황이 바뀌니 보이는 것, 생각되는 모든 것 들이 새롭게 나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들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책읽기와 블로그의 리뷰가 50회가 넘었고 51회째 독서와 리뷰를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퍼스트 라이프를 잘 살아와서 자연스럽게 세컨 라이프가 연결되었구나! 하는 마음의 위로를 받았고, 준비하지 못한채 시작한 세컨라이프의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한 해답을 책과 함께 찾아 보고자 지금도 열심히 책장을 넘기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나 혼자였으면 더디었을 나의 인생 후반전에 페이스메이커 로서 후반전 게임의 심판으로 함께 해준 백근시대를 빼놓을수 없을 것 같다. 탁구 경기처럼  서로에게 인사이트를 주고 받고 하면서 성장의 연습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오늘까지 올 수가 있었고 앞으로도 가쁘게 갈수 있을 것 같다. 이글도 완성되면 백근시대의 블로그 댓글로 올릴생각이다. 세컨라이프로 태어난지 벌써 백일째가 되어간다. 처음에 가졌던 막막한 안개같은 앞날이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내적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 스스로 대견 하다고 해주고 싶다. 이제는 전 직장이라고 표현 해야하는 27년을 바친곳에서 자의든 타의든 빠져 나올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나에게는 기회의 시간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모든 것이 안정화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업무의 연속성이 있는 곳이라 빠른 속도로 적응해 가고 있다. 그동안은 우물안에서 주어진 틀 속에서 짜 맞추기식의 업무영역에서, 크던, 작던, 변화와 도전을 시도해서 새로움을 창조하여 조직의 발전과 조직원 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기 위한 노력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임감 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 무모한 도전 보다는 무난한 안정성을 추구하다보니 조직과 개인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준비 작업등을 전혀 생각해 보질 못했다, 어찌 됐든 중간만 가면 되는 조직 생활의 기본만 지키면 된다는 사고가 이미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예기치 못한 장기간의 휴가가 나의 평균을 넘어선 변화와 도전을 향한 행동에 당황한 조직의 기존 행태를 이기지 못하고 밀려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움을 창작해 내기 위하여 고민하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지금은 시작 단계라 모든 것이 낯설고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지만 경험하고 실패 할수록 가능성 높은 도전은 계속 될수 있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나 같이 후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과 친구가 될줄 알아야 하고 관계형성을 정리해야할 시기라고 책에서 읽고 위로를 삼은 적이 있다. 명함으로 살아온 인생 이제는 나로 살아 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세컨라이프에서도 명함을 얻었다. 전 직장보다 화려한 명함 이지만 겸손의 명함이다. 지금까지 명함에 끌려다닌 생을 살았다면 앞으로는 내 명함을 이끌면서 살아 보려한다. 업무 특성상 관계형성이 어쩔수 없지만 치열한 경쟁구도를 유지한채의 관계이기 때문에 갑을관계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세상 속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 속으로 내가 들어가야 하기에 나는 그들 보다 두배 이상의 성장을 향한 공부를 해야 하고 경험을 얻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라 비발디 건설사 부회장 하고 식사 할 경우가 있었다. 물론 우리 대표님과 함께 한 자리이지만 나는 그동안 몸에 베인 탓인지 정중한 예를 갖추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대표님 왈 “지네 한라 회장이지 내 회장은 아니잖아”하면서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에서 또 하나의 깨우침을 얻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라건설은 엄청 큰 대기업 이라고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의 후반 인생은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성공해야 한다. 그것도 많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를 내친 조직에 대한 복수의 의미가 담긴 맘이었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조직을 떠나온 이후로도 가끔씩 업무적이든 개인적이든 전 직원들과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나와 조직과는 어떤 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조직내에서 역할을 잘 할수 있도록 독려해 주고 싶었고,비록 밖에 있는 몸이지만 조력자 로서의 역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많이 성공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느날 식사자리에 동석을 한적이 있다. 알콜이 들어가니 그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던 것이 입밖으로 튀어 나왔다. “야 근데 왜 나 나갈 때 가만히 보고만 있었냐” ’내가 나간다고 하니까 속이 시원하디?‘ 물론 악의 없는, 그들도 잘 알고 있는 나만의 언어로 정감있게 물었다.“그러닌까요. 개인적으로는 탄원서 라도 써야 하지 않나 생각 했어요’ ‘하지만 상무님은 걱정이 되지 않았어요. 뭔가 잘 되실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다들 그렇게 생각 했을걸요’  그날 밥값은 내가 낸 것 같다. 백수였는데.

옛말에 죄를 짓고는 못산다 라는 말이 있다. 반대로 정직하게 정성껏 살라는 뜻이다.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인정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일 것이다. 정말로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을까! 아님을 안다. 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짐은 어쩔수 없다.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라고 한다. 상대의 달콤한 유혹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엑기스를 노리는 모기의 빨대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손바닥으로 모기를 잡지 못한다. 피를 묻히기 때문이다. 내것을 빼앗아 가기 위한 상대의 몸짓에 나는 알면서도 당해주어야 할때가 있다. 그것이 세상이고 인생이다. 하지만 분명히 지켜야 할 마지막 ”나“는 목숨걸고 지켜야 한다, 나없는 인생, 세상은 아무 소용이 없기에 나를 분명히 찾아서 전면에 당당히 세우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 모든 세상의 주인공은 ‘나’임을 잊지말자.

세컨라이프의 삶이 퍼스트라이프의 삶과 크게 달라 지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관계형성하고,또 다음날을 맞이하고, 이렇듯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속에서 새로움을 항상 찾아 노력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그 과정 속에서 나는 또 한번의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비록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나의 생활을 스스로 칭찬한 적이 있다. 얼마나 어리섞었는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이전부터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가 병원을 가보면 이세상 사람 모두가 환자인냥 생각되고, 놀이공원에 가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놀러만 다닌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듯이 나는 그동안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살고 있는줄 알았고 그중에서도 그나마 내가 좀더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웠다. 인생은 강력한 임팩트가 필요하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천둥의 울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처럼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도 현실속을 헤쳐 나오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우리네 모습 속에서 내가 보여준 장기간의 휴가가 그들에겐 어떻게 보여졌을까!

새로운 조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 했었다. 그동안 이들이 형성한 조직의 문화속에 내가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조용히 그 조직문화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조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조직이라 생각하고 지금 있는 이 조직도 전에 내가 있었던 조직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금융권의 제도적 조직과 개인 사조직의 차이는 상당했다. 전에 있는 조직은 수익과 급여에 대하여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지금의 조직은 진행하는 사업으로 인하여 수익을 발생시켜야 인건비를 받을수 있다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조직의 문화를 좌우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전투적 성격이 강하다. 그동안의 조직에서 현실적인 문제 보다는 과거자료에 대비하여 티나지 않는,안정적인,중간자적 입장에서 도전과 혁신을 두려워 하며 지내온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 조직에서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전 조직의 문화가 현 조직의 문화와 전혀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사는 세상은 다 똑같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발언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알고 싶어서 모두가 공감 수있도록  회의를 진행 하면서 회의록을 작성해 배포하는 경지에 까지 왔다. 내가 이 조직에서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이 소통과 공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원인을 알수 없어서 지켜보기만 했는데,조직에 프로젝트가 여러건이 있지만 각자의 건만 관심이 있고 다른 건에 대한 관심도가 부족했다, 그리하여 매일같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해당되지 않더라도 누가 무슨일을 하고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도와줄수 있는지에 대한 업무공유의 시간과 방법 모색의 시간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30분정도 되다가 지금은 한시간은 기본이고 대표님이 참석하는 날은 오전은 회의와 회의로 끝나버린 경우도 있다, 어쩔땐 점심 먹고 와서도 계속 한적도 있고, 그래도 안풀리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울 본사 담당자까지 찾아 가기도 한다. 전직원이 서울까지 가서 관련사와 같이 회의를 진행한 적도 있다. 혹자는 이야기 할 것이다. 회의만 하다가 일은 언제하냐! 심지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고 하는일과, 알고 하는일 중에서 어느쪽이 효율적인가를 따져보자.그렇게 나의 세컨라이프는 순조롭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영입 제안이 왔던 적이 있다. 아직은 내가 남겨놓은 그림자가 전조직 세계에서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나또한 전조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버리려 애쓰고 있다.그래야 지금의 생활에 충실할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길을 잃을 뻔한 나에게 나침판을 쥐어준 지금의 조직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조직이 나에게 감사하게 만든다면 어떨까! 윈윈일까! 자신감의 문제인 것 같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다 보니 전면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모르는 것은 배우면서 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가르쳐 주면서 서로 성장하자고 격려하면서 가고자 한다.생각이 많아진다. 사회생활의 첫 직장인 젊은 친구들과 공무원 퇴직을 하고 입사한 사회적 선배님 그리고 아직 어린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가장인 친구등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로 조직된 이 회사에서 내가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능력을 평가 해보는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백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라고 할지 모르지만  요즘 연인의 만남도 백일을 중시하고 지금도 가끔씩 백일 떡을 얻어 먹은적도 있다. 이렇듯 아직까지 백일의 의미는 천일을 갈수 있는 발판이 되고 백년을 갈 수 있는 시작이 될수 있기에 세컨라이프의 탄생 백일인 이날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에 간직하여 깊이 간직하고 싶다.


  • 앞으로 돌잔치 까지 열심히 읽고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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