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동심은 다른가
요즘같이 낮과 밤의 구별이 없을 정도로 밝은 세상이 아니었던 어린 시절에 어둠이 무서워 화장실을 가지 못하거나 옆에서 자고 있는 형이나 엄마를 깨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귀신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창고 벽면에 세워둔 빗자루가 귀신의 모습을 하고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상상을 했던 시절이었다. 동화책이나 할머니의 귀신이야기는 어린 우리들에게 말썽 부리지 말고 착하게 살기 바라는 의도에서 귀신을 빗대어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임을 알지만 그때는 진짜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면 이불속에서 겨우 눈만 내놓고 숨죽여가면 보던 그 순수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전쟁놀이를 하면서 적군을 물리치던 소대장으로 빙의되거나 소꿉놀이를 하면서 아빠나 어른이 되어본 기억들이 이제는 현실이라는 장막이 그때의 시선을 가려버리고 있지만 가끔씩은 소환하고 싶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계속 바뀌어 가고 있다. 특별한 사고를 통하여 창조적인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위한 호기심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현실이라는 굴레 속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기보다는 현재의 안정에 머무르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많은 상처를 경험한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꾸고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 속에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보다 과거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던 동심과 앞으로의 이상과의 조우를 시도해 봄 직도 하다. 어렸을 적 전쟁놀이는 현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놀이에서 경험한 소대장의 감정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것이다. 소꿉놀이에서 경험했던 어른의 모습으로 지금 우리는 살고 있지만 그때 느꼈던 어른이나 아빠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은 사뭇 다르다. 이상과 현실과의 간극이 생기게 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상상하고 이상을 추구하려는 것은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 실현을 위한 환경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전쟁놀이에 등장한 멋진 총은 나뭇가지가 대신했고 돌멩이는 수류탄의 역할을 했다. 실제 전쟁은 아니지만 우리들 만의 상상 속의 전쟁을 현실의 모습으로 구현해 내면서 소대장으로서 부대원들을 통솔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등의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실제의 상황은 아니지만 상상 속에서는 실제의 긴박한 전쟁상황이라 생각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빙의된다. 이런 마음은 동심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의 이야기나 자신의 이상에 맞는 이야기에 심취하다 보면 현실의 세상이 바로 그 상상하는 세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세르반데스의 "돈 키호테"를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기사도 이야기에 빠지게 되면서 기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기사로서 사회정의를 위하여 불의를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실제로 갑옷과 노쇠한 말을 타고 세상을 구하러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이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어눌한 농부 산초와 동행하면서 마법사의 농간으로 거인이 되었다는 풍차를 공격하고 허름한 여인숙을 훌륭한 성으로, 주막집의 술 파는 여인을 공주로 여기며 사랑하게 되고, 이발사의 놋대야를 황금투구로 상상하고 미코미코나 공주를 구하기 위하여 여인숙의 포도주 부대를 망가트려 방안을 빨갛게 어지럽히는 행동들이 합리주의자들의 시선으로는 이성적이지 못한 바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낭만주의자들의 시선으로는 세계의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할 것이고. 현실의 벽에서 헤매고 있는 노동자들의 시선에는 배부른 귀족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상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실의 모습을 자신의 상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속에서 모방하기도 하고 변형하기도 하며 자신의 성장과 발전의 에너지로 사용된다. 오늘도 우리는 마음속에 이상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가상의 세계를 꿈꾸지만 그 꿈을 현실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키우고 있다. 그것이 호기심과 상상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자기 계발의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이유가 자신의 현실을 상상하고 추구하는 이상의 세계로 바꾸고자 함이다. 자신의 이상에 맞게 현실을 바꾸려는 돈키호테의 행동 생각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다는 무책임한 행동인지 아니면 꿈을 향하여 도전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의 이상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인지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가 내릴 뿐이다.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과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이상과 미래 지향적인 삶을 위한 노력이 허황된 꿈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일지 모르지만 일단 저질로 보는 것이 용감한 행동인지 아니면 너무나 많은 생각으로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돈키호테를 보면서 눈을 감아본다.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이 합리적인지 낭만적인지 이상적인지 현실적인지는 타인의 시선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에 맞는 것인지에 대한 사고와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마를 타고 멋진 갑옷을 입고 불의를 향해 달리는 도키호테의 모습과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트 삼아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글을 쓰면서 나의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모습은 합리주의도 낭만주의도 현실주의도 아닌 나만의 돈키호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