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고 말하지마라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미리 정해져 있거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나 상황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정해졌다고 하는 운명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조물주가 정해준 운명에 대하여 무조건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아모르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운명을 사랑하며 정해진 운명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발전시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보통 어려움에 처해 해결을 하지 못하거나 실패를 경험했을 때 운명이라는 핑계를 대곤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자기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것을 조물주나 우주의 섭리라고 하여 거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의 결과로 나타난 업보라고도 생각한다. 문제는 운명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을 거스르라고도 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자기 계발의 노력을 하는 것은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이다. 정해진 운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더 나은 자신만의 삶을 위한 것이다.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으로 태어나든 자신의 숟가락은 가지고 태어난다고도 한다. 태어난 이상 생존을 하지 못한 운명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은 스스로가 개척하기도 하지만 주변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운명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하고 대비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좌절하고 실패하는 경험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치부하게 된다. 반대로 성장과 발전의 성공을 하면 그것은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운명은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주변환경에 의해 운명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순수하면서도 강인한 농촌처녀 "테스"는 가족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가족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간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경제적 발전을 통한 번창한 시기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윤리의식과 종교적인 믿음이 강조되었던 시기이다. 사람들은 가문을 중요시 여기고 내실보다는 보이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교전통이 강하여 삼강오륜 등 윤리와 허례의식을 중요시한다. 양반과 평민과 노예계급의 구분이 강하였고 높은 신분으로의 진입은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돈으로 신분을 사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영국에서도 귀족계급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돈 많은 평민들이 있었고 몰락한 테스의 가문을 돈으로 산 더버빌 가에 의해 테스의 가문은 다시 태어났다.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만 가문상으로는 친척이 되었던 것이다. 무늬만 친척인 더버빌 가문의 하녀로 들어간 테스는 오로지 가족의 경제적 도움만 생각하며 모든 것을 참아내며 지냈다.
평민에서 귀족신분이 된 더버빌 가문의 아들 알렉은 모습은 귀족이었으나 행동은 결코 귀족스럽지 않았다. 끊임없이 테스를 유혹하려들었고 결국 테스는 알렉의 아이를 낳게 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결혼도 안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정한 여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테스 옆에는 가족이 있었기에 이것 또한 참아낸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죽게 되고 에인절이 있는 목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에인절의 구애를 받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거부를 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되고 결혼을 하지만 과거를 과거를 털어놓은 테스의 이야기를 듣고 에인절은 떠나 버린다. 에인절 또한 한때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고백했지만 테스는 용서했다. 하지만 남자는 잘못을 할 수도 있고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회적 시선을 에인절은 부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다시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테스 앞에 알렉이 목사가 되어 나타난다. 과거를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알렉을 본 테스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잘못을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알렉을 죽이고 만다. 뒤늦게 에인절도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테스를 찾아오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작가 토머스 허디는 "테스"라는 작품을 통해 영국 사회를 비판했다고 하지만 타고난 운명을 수용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테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알렉이나 사회적 시선, 그리고 운명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내 운명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하다. 힘들고 고달픈 시기를 겪는것은 내가 짊어지어야 할 운명이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타인의 등에 떠밀려서 온 것도 아니다. 테스가 알렉을 만나지 않았다면을 생각하기 이전에 테스가 가족의 형편을 걱정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에게 의지하면서 살았어야 했다. 결국 운명을 바꾸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하는 것이다. 다른 길을 갔더라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이 나의 인생을 살아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운명이라 하더라도 그 운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았는지 아니면 개척하며 살았는지 생각해 보며 내일을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