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라이프의 희망여행

그렇게 조금씩 피어나는 열정

세컨드 라이프의 희망여행 2025. 4. 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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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라고 하는 것은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육지에서 영사기를 가지고 들어오는 영화사인지 아니면 극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장사치가 있었던 것은 기억난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육차원에서 보여준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영화는 교육적인 면에서 굉장한 효과가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된다. 남북간의 이념대결에 대한 반공사상이 아직은 팽배하던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르쳐 주는 대로 간첩신고는 113을 112보다 많이 외우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 안방과 부엌 사이에 초코지불을 켜놓고 살았다고 하면 내 또래의 친구들도 거짓말이라고 타박한다. 하지만 내 기억속에 자리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굳이 이를 확인시키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고 싶다.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공급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9시까지만 이었다. 그때 우리는 밤눈이 참 밝았던 것 같다. 희미한 불빛에서도 할 수 있는 행동을 다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살고자 했던 인간의 열정이 환경을 극복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적응력을 우리는 타고났다. 그러기에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이다. 열정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적응하려는 에너지원이다. 이미 잠재되어있는 열정을 꺼낼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여느날 처럼 우리는 산속의 놀이터를 무대 삼아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점령하지 않았던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삼각형의 작은 깃발들이 능선을 따라 박혀있는 것들을 보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간첩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서로 달려갔다. 간첩신고를 하러 간 것이다. 결국 한전에서 전기공사를 위해서 철탑과 전봇대의 동선을 표시해 놓은 것이었음을 알았다. 지금에야 그런 장면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땐 12년 인생에 처음 본 광경이었고 처음으로 내 안에서 명령하는 것을 수행한 것이었다. 그래도 칭찬받으면서 그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그렇게 우리 섬에도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대문명의 혜택은 정말 어마어마 했다. 전기가 들어옴으로써 저녁마다 챙겨야 했던 초코지에 기름 채우는 일을 안 해도 되었고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타박은 들었지만 숙제를 9시 넘어서해도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리어카에 텔레비전을 싣고 오셨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고 열쇠로 잠가 놓기는 했지만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텔레비전 앞에는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었다. '타잔'하고 '전우'라는 프로그램은 아직도 내 마음속엔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초저녁 소에게 풀을 뜯게 할 시간과 겹치는 것만 빼고는...


그때부터 세상과의 소통은 나의 열정의 방향을 잡아주기 시작 하였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볼 수 있었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수집되기 시작했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옆동네에서 살고 계시는 담임 선생님을 보면서 마음속에 뭔가가 꿈틀 거림을 느꼈고 처음으로 장래희망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생각은 크면서도 바뀌지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나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았거나, 그때의 상황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 부터 생각의 범주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고등학교는 도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독립을 의미하였다. 지금의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시절에서 이제는 세상 밖으로의 나가야 한다. 그것도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하면서 두려움도 함께 말이다. 난생처음으로 밟아 본 아스팔트의 느낌은 신작로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고 50원이라고 적혀있는 조그만 종이 조각만 있으면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챙겨야 할 것은  자취생활 즉 독립생활에서 필요한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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